엄마 리브가의 말만 듣고 시키는대로 한 것 때문에 그렇게 행복하고 사랑받던 가족을 등지고 거기다 형 에서의 분을 사 하나 밖에 없던 형에 손에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정처없이 길을 떠나냐되는 비참한 현실을 맞게된 야곱.
목숨을 살리기 위해 집을 떠났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가운데 한 곳에 이르러 한 돌을 무심코 집어 베개삼아 잠을 청한 야곱. 그렇게 아무런 희망없이 잠이든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그에게, 야곱의 삶에 허락하신 것을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않겠다(15절)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그에게 그의 자손이 동서남북으로 지평을 넓혀가며 땅의 모든 족속이 그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14절)는 풍성한 가운데 베풀고 나눌 수 있는 복을 주시겠다 약속하셨다.
야곱은 여행길에 지쳐 아무런 생각없이 머물렀던 그 한 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다는 것을 깨달았다(16절) 자신은 혼자 외톨이가 되어 이름도 없는 그 한 곳에서 잠을 자게 되는구나 했던 그 자리에 하나님은 함께하셨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그 한 곳, 이 곳이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 문이라고 고백한다(17절). 또한 무심코 집어 베개삼은 그 한 돌을 가지고 기둥을 세우고 기름을 부으며 하나님의 집이라 칭하며 벧엘이라 명명한다.
야곱이 있는 자리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리라 생각되니 볼품없던 그 한 돌이 귀해지면서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이 계시는 집의 기둥으로 삼게된 것이다.
내 삶속에 내가 생각하는 무의미한 그 한 곳, 크게 가치를 두지 않는 그 한돌이 바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일때 내 삶속에 무의미했던 돌들이 하나님 집의 기둥으로 바뀌는 것이다. 아니 하나님의 집의 기둥으로 바꿔나가는 것이다.
청소년 시기에 아무런 희망없이 주님만을 바라보았던 그 삶속에, 그 볼품없고 초라한 그 무의미한 그 한 곳, 또 그 한 돌에 주님은 나와 함께하시며 내 삶속에 허락하신 일을 다 이루기까지는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시며 나를 통하여 내 안에 계신 주님의 풍성한 은헤를 세상 모든 이들에게 끼치게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주님,
내 자신을 바라보고 현실을 바라보면 절망스럽지만 내 하나님이 된신 주님을 바라보며 내가 있는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 문임을 고백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결코 제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주님을 따라 살려는 모든 중앙 청년들에게.....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2011년 3월 10일 목요일
2011년 3월 4일 금요일
행 15:36-40 바울이 결코 같이 데리고 갈 수 없었던 마가
36절: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절: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절: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절: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바울이 1차 전도여행때 마가의 행동으로 몹시 화가 나있었다. 마가가 일행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일이 바울에게는 전도사역에 도움이 되지않는, 같은 비전을 품지못할 배신자 같은 사람으로 여겼다. 그랬기에 바나바와 심히 다투기까지 하며 끝끝내 2차 전도여행에 마가대신 실라를 데리고 갔다.
그렇게 마음에 안들고 미웠던 마가를 바울은 결국 그를 사랑하는 동역자로 가장 보고싶은 믿음의 형제로 그를 찾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예수때문에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된다.
빌레몬서 1:24에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라고 하면서 그를 사역의 동역자라고 소개를 하고 있으며, 디모데 후서 4:11에 "....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라며 보고싶다며 또 바울 자신에게 유익이 된다며 디모데에거 올때 같이 와달라 부탁을 하고 있으며, 골로새서 4:10에 "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바울과 같이 감옥에 까지 함께 갇히게 되는, 함께 고통을 나누는 동역자로 그를 소개하고 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한번 눈 밖에 난 사람을 받아들 일 수 없는 것이 정상일지도 모르나 그러나,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는 예수를 위해, 예수 때문에 또 복음을 위해 마가를 받아들이고 동역자로 보고싶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함께 감옥에까지 갇히는 자리에 가는 것이다.
주님,
아직 우리 마음속에는 같은 믿음, 같은 복음을 가졌어도 함께 나누지 못하며 서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못하는 믿음의 형제가 있습니다. 저희의 완악함을 용서하여 주시고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으로 사랑으로 그들을 같음 믿음의 형제요 사랑하고 보고싶은 형제로 또 복음을 위해 같이 고난받을 수 있는 형제로 받아 들일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39절: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절: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바울이 1차 전도여행때 마가의 행동으로 몹시 화가 나있었다. 마가가 일행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일이 바울에게는 전도사역에 도움이 되지않는, 같은 비전을 품지못할 배신자 같은 사람으로 여겼다. 그랬기에 바나바와 심히 다투기까지 하며 끝끝내 2차 전도여행에 마가대신 실라를 데리고 갔다.
그렇게 마음에 안들고 미웠던 마가를 바울은 결국 그를 사랑하는 동역자로 가장 보고싶은 믿음의 형제로 그를 찾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예수때문에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된다.
빌레몬서 1:24에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라고 하면서 그를 사역의 동역자라고 소개를 하고 있으며, 디모데 후서 4:11에 "....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라며 보고싶다며 또 바울 자신에게 유익이 된다며 디모데에거 올때 같이 와달라 부탁을 하고 있으며, 골로새서 4:10에 "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바울과 같이 감옥에 까지 함께 갇히게 되는, 함께 고통을 나누는 동역자로 그를 소개하고 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한번 눈 밖에 난 사람을 받아들 일 수 없는 것이 정상일지도 모르나 그러나,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는 예수를 위해, 예수 때문에 또 복음을 위해 마가를 받아들이고 동역자로 보고싶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함께 감옥에까지 갇히는 자리에 가는 것이다.
주님,
아직 우리 마음속에는 같은 믿음, 같은 복음을 가졌어도 함께 나누지 못하며 서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못하는 믿음의 형제가 있습니다. 저희의 완악함을 용서하여 주시고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으로 사랑으로 그들을 같음 믿음의 형제요 사랑하고 보고싶은 형제로 또 복음을 위해 같이 고난받을 수 있는 형제로 받아 들일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2011년 2월 28일 월요일
엡5:2 ...자신을 버리사...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1절에 하나님을 본받는자가 되고라고 하면서 2절에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말씀하신다. 사랑가운데 행하는 삶이,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바로 하나님을 본받는 삶이라는 것이다.
주님을 본받는 삶, 주님을 닮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님처럼 자신을 버려야한다.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기위해서는 자신을 버려야한다. 그래야 향기로운 제물이되고 희생제물이되어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다.
왜 교회안에 사랑이 없나? 바로 자신을 버리는 일이 없기때문이다. 자신을 버리지 않은 예배, 사랑이 없는 예배는 결코 향기로운 제물, 예배가 될 수 없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희생제물, 온전히 드려지는 예배가 될 수 없다.
내 자신이 없어야.... 자기 자신을 버리는 연습을 해야한다.
이재훈이는 없다. 이재훈이를 버린다... 예수를 위해....
주님, 제 자신을 버릴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자신을 버리시며 사랑을 보이신 것 같이 제 자신을 버려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절에 하나님을 본받는자가 되고라고 하면서 2절에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말씀하신다. 사랑가운데 행하는 삶이,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바로 하나님을 본받는 삶이라는 것이다.
주님을 본받는 삶, 주님을 닮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님처럼 자신을 버려야한다.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기위해서는 자신을 버려야한다. 그래야 향기로운 제물이되고 희생제물이되어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다.
왜 교회안에 사랑이 없나? 바로 자신을 버리는 일이 없기때문이다. 자신을 버리지 않은 예배, 사랑이 없는 예배는 결코 향기로운 제물, 예배가 될 수 없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희생제물, 온전히 드려지는 예배가 될 수 없다.
내 자신이 없어야.... 자기 자신을 버리는 연습을 해야한다.
이재훈이는 없다. 이재훈이를 버린다... 예수를 위해....
주님, 제 자신을 버릴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자신을 버리시며 사랑을 보이신 것 같이 제 자신을 버려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카렐 - 노벨 생리학 수상자
의학자 알렉시스 카렐(1873-1944)은 혈관봉합술을 발달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1912년 노벨생리, 의학상을 수상하는등, 혈관 조직의 이식에 관해 세계적인 권위자였다. 또한 독실한 신앙인이기도 했던 그는 특히 기도에 대해 의학적으로 강조했던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기도는 인간이 발생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형태의 에너지이다. 지구의 인력이 실제로 존재하듯이 이 에너지 역시 실제로 존재하는 힘이다. 의사로서 나는 다른 모든 요법이 실패한 다음에 기도하는 엄숙한 노력에 의해 질병이나 우울로부터 벗어나게 된 예를 많이 보아왔다.기도는 라듐처럼 빛나는 자기 발생 에너지원이다. 기도로써 인간은 자신을 모든 에너지의 무한한 근원에 호소하게 되고 자신의 유한한 에너지를 증대하게 된다. 우리가 기도할때 우리는 우주를 회전시키는 무한한 원동력과 우리를 연결시킨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인간적 결함은 채워지고 우리는 강해지며 치료되어 일어서게되는 것이다.
우리가 열렬한 기도로 하나님께 호소할때 우리는 영혼과 육체를 보다 좋은 것으로 변화시킨다. 얼마 안되는 일순간의 기도일지라도 기도하는 자에게 반드시 무언가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준다"
또한 그는 그의 책 [알 수 없는 존재, 인간]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도가 인간의 심신에 미치는 영향은 호르몬의 영향과 같다. 기도를 꾸준히 하면 지적 활력이 증대되고 인간관계에 대한 넒은 이해력을 갖게되고, 온전한 인격 형성에 필수 불가결하다.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우리는 마음과 몸 그리고 우리의 필요에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빌 4:6-7
* 카렐은 일차원적인 기도의 생활을 얘기하지만 기도의 중요성과 능력에 대해 잘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깊은 의미의 기도는 내 필요를 채우고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2011년 2월 22일 화요일
하버드 - 하버드 대학 설립자
미국 매사추세프주 켐브리지시에 위치해 있는 하버드 대학은 1636년에 미국 최초로 설립된 사립대학이자 현재까지 최고의 명문 대학으로, 설립자 하버드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명명되었다. 이 대학의 설립 취지는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위한 것으로, 하버드 대학 정문에는 지금까지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뉴잉글랜드에 안전하게 인도하여 주신후, 우리는 우리의 집을 지었고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안락한 장소를 마련하였고, 시민 정부도 세울 수 있었다. 우리가 고대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지식을 배워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 배운 지식을 우리 세대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후대에까지 물려 주어야 할 것이다."
하버드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모든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생의 궁극적인 목적들을 진지한 태도로 생각하도록 가르쳤다. 이렇게 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했다. 또 이를 통해 모든 지식의 유일한 근원으로서 그리스도를 깨닫게 된다. 나아가 주님만이 지혜를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도 알게 된다. 모든 학생들이 기도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주님이며 만물의 창조자라는 것을 은연 중에 깨닫게 하였다."
지헤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와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 잠언 9:9-10
2011년 2월 14일 월요일
헬렌켈러 - 맹농아인 봉사자
헬렌 켈어(1880-1968)는 출생 후 19개월만에 심한 열병으로 눈, 귀, 입 모두 3중고의 장애를 입었다. 이런 상태에서 그녀는 셀리반 선생의 끈질긴 노력과 희생으로 7년만에 겨우 ´Water´(물)이라는 한 글자를 배우게 된다.
그 이후에도 그녀는 불굴의 투지를 발휘하여 하버드 대학의 래드 클리프 칼리지에 입학하여 우등으로 졸업했을 때 세계가 놀랐다. 또한 그녀는 그리스어, 라틴어 독일어, 불어등에도 능숙하였는데 이런 그녀의 노력과 투지는 그 자체로서도 세계의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녀는 미국 전역과 해외로 강연을 하러 다니며 맹농아인들을 위한 기금을 모으는등 복지사업에 큰 공헌을 함으로써 '빛의 천사'로 불리게 되었다.
언젠가 미국성경공회는 그녀에게 점자성경을 특별히 선물해 주었던 적이 있었는데 며칠후 그녀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화요일 저녁에 제가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을 때 보내주신 점자성경이 도착했습니다. 너무도 기쁜 나머지 식사중인데도 포장을 풀고 말았습니다.
저는 40년간 성경을 애독해 오고 있습니다. 성경은 목자의 지팡이처럼 저를 인도하고 제가 잘못 걷지 못하도록 지켜줍니다. 성경만이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며 어두움에서 살려 준다고 믿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라는 에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헤렌켈러는 다음과 같은 말들을 남겼다.
"희망은 사람을 성공으로 이끄는 신앙이다. 희망이 없으면 아무것도 성취되지 않는다". "나의 생애에서 닥쳐오는 모든 고난은 하늘이 값없이 내리는 은혜다".
"다른 사람에게는 내가 가는 길이 어두울 것으로 여기겠지만 나는 내 마음속에 신비한 빛을 가지고 간다. 신앙이라는 강한 영적 등이 내 길을 비추어 주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불행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불행은 눈을 가지고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는 죽기직전에 이런 말을 했다.
"나의 생은 정말 아름다웠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롬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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