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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4일 목요일

예수님을 위하는 것이란?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은?

막 14:6
예수께서이르시되 가만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의 옥합을 예수님의 머리에 붓자 가롯유다가 그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을 허비한다며 책망할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막14:1-6)

이 여인의 행동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좋은 일을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비해 가롯 유다는 허비한 것이라고 말한다.
같은 일을 보고 예수님과 가롯 유다의 반응이 대조적이며, 이 여인을 보는 관점이 달랐다.

관점의 차이의 시작은 “매우 값진 향유”라는 데서 발생한다.
만약 매우 값진 향유가 아니었다면 유다는 그래도 이 여인을 책망했겠는가?

“매우 값진 향유”라함은 이 여인에게는 전 재산이요, 전 삶이요, 여인의 모든 것이요, 인생의 희망이요 미래인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여인이 그것을 예수님께 드렸다. 
자신의 전 인생을 드린 그녀에게 예수님이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고”말씀하셨다.  인생에 가장 귀하고 값진 일을 했다고, 당연히 한 인생으로써 해야할 일을 했다고  칭찬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나 가롯유다는 인생에 가장 고귀하고 값진 것을 가지고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그녀가 그 귀한 향유전부를 예수님께 드렸다는 것에 분노했다.

계산적으로나 이치적으로나 그 값진 향유를 팔면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고 큰 일을 행할 수 있으며 더 값진 일을 할 수 있는데 단번에 예수님께 쏟아 붓는 일을 보고 “허비”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예수님에게 좋은 일, 예수님을 위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귀한 것을 드리면서 또 주의 일을 하면서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많다. 사실은 자신을 위한 것임을 숨긴채 말이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은 그를 위하는 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많이 하고 희생하고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모든 것,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

사실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 여인을 책망하며 그 비싼 항유를 허비한 것에 분노했지만 그 마음의 중심에는 자기를 위한 것이었기에 화가 나있던 것이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 요12:6

결국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는 명분으로 말했던 그가 막14:11에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일을 하게된다.
예수님에게 좋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팔아 넘기를 해가되는 일을 하게된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는 명분으로 무언가를 할때 마음 깊은 곳의 자신의 의를 드러내거나 자신의 어떤 이익을 위한 것을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예수님에게 해가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주님의 일이요, 사역이요, 선한 많은 일이라 할지라도.

“매우 값진 향유” 인생의 전부를 예수님에게 드리는 것이 예수님을 위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내 맘대로 내 인생을 설계하고 사용하면 않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가장 값진 것을 우리의 인생을 그분에게 드리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이다.

2013년 1월 16일 수요일

구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지는 기도는?




구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지는 기도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1서5:14,15

요1서에서는 주의 뜻때로 구하라고 말씀하고, 마가복음에서는 기도하고 구하라 하신다.
그렇다면 주님께 우리의 필요를 구하기는 구해야하는데 분명 그의 뜻대로 구하라하시고, 기도하고 구하라 하신다.
기도하라과 주님의 뜻대로 라는 것은 같은 의미인데, 즉 기도하는 것은 주님의 뜻을 묻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가 구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기도하면무엇이든지 들어주신다고 믿고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도는 단지 구하는 것이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기도는 주님의 뜻을 묻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기도를 먼저 한후에 구하라 말씀하는 것이다.
즉 주님의 뜻을 묻는 기도, 주님의 뜻을 먼저 알고 구하는 모든 것은 들이신바가 되고 그 구하는 것을 얻게되고 받게 되는, 그대로 된다는 말씀인 것이다.

“너희가 내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3-14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예수님께서 행하신다고 하는 말씀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다 그럴때 예수님께서 행하신다고 응답해주신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이 들으신바되고 응답받는 바가 되려면 주님의 뜻을 묻는 기도가 우선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묻는 기도도 하지않고 즉 주님의 뜻을 듣기도 전에 구하기를 먼저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이 주님의 뜻대로(기도하지않고) 구하기를 했는가, 구하는 것에 응답을 받지못하면 주님이 NO로 응답을 해주셨다고 주님의 뜻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믿으려 한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한후의  구하는 모든 것 다 들어주시기를 원하신다. 문제는 주님의 뜻대로 구하냐이다.
주님의 뜻대로 구하지않았으니 당연히 주님께서  NO로 응답해 주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이 Yes로 응답을 받으려면(주님이 그렇게 해주시기를 원하시기에) 먼저 주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한다.

주님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를 하시고 행동하셨다.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5:30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시는 주님이셨다.
그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처절한 기도도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를 하셨다.

"이르시도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눅22:42

먼저 아버지의 뜻을 묻는 기도를 하시고 그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셨다.

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아니라 주님이 원하는 것을 구하는 모든 것은 다 들어주시고 주신바 된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주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할 수 있나?
주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어떻게 주님께서는 주님의 뜻을 알려주시나?
이것이 바로 내게는 큰 의문이며 내 믿음의 한계이며 믿음의 적은 나의 신앙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해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또는 성경말씀이나 예배를 통해 또는 찬양을 통해, 또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가 다 잘 아는 방법이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얼마나 주님의 뜻인줄 알고 확신하다가 결국 구하는 것의 NO의 응답을 받았는가?
주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못하고 구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너무 쉽게 구하는 것이 문제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래서 그 바쁘신 중에서도 항상 기도에 힘쓰셨고 기도를 중요시하셨다. 바로 아버지의 뜻을 묻고 알기위해 기도를 하셨던 것이다.

"무리가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막 6:46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1:35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눅6:12

주님의 하루일과와 가장 우선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교통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중요시하시고 기도의 생활을 하신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필요를 구하기전에 먼저 주님의 뜻을 알기위해 기도를 해야하는 것이다.
주님과 깊이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주님께 영적인 귀를 열고 그의 뜻을 알기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하는 것이다.
그래야 주님의 뜻대로 구할 수 있는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말이 너희 안에 서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8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골4:2

“쉬지말고 기도하라”-살전5:17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삼상12:23

주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즉 주님과의교제이며 교통이다. 주님안에 거하고 주님의 말씀이 내안에 거하는 항상 주님과의 긴밀한 교제안에서 있을때에 구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갖고 유지하려면?
연습과 연단이 필요하다.

경건을 연단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달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7,8

 En el Nuevo Testamento el término eusebeia(εὐσέβεια)
, traducido como piedad, incluye las ideas de temor a Dios, obediencia a sus mandamientos y vida religiosa. El énfasis es hacia la vida práctica(vida religiosa).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품이 일어나느니라,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6:3-6


주님, 주님의 뜻을 알기를 소원합니다.
먼저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뜻을 알고난 후에 구하기를 원하는데 주님의 뜻을 확실히 알기가 믿음이 적어 쉽지않습니다.
기도를 통해 주님의 뜻을 듣고 알수 있도록 영의 귀와 영의 눈과 영의 모든 감각을 민감하게 하시어 주님의 뜻을 알려주실때 확실한 주님의 뜻을 먼저 알고 주님의 뜻대로 구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