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함께하시어.... 가나안 족속을 다 쫓아내지못했다?
여호수아가 죽기전에 사생결단을 하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촉구한다(여호수아24:15).
여호와를 택할지 아니면 우상을 택할지 양자택일을 하라는 여호수아의 강경한 입장에 백성들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대답을 한다(여호수아24:15).
드디어 여호수아가 죽고난 후 사사시대가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들을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넘기시고 제비뽑아 얻은 땅을 각 지파별로 차지하라하신다.
사사기 1장 1절에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까"하고 묻자 2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이땅을 그의 손에 넘겨주었노라 하시니라" 하시어 유다지파는 시므온 지파와 함께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족속을 치고(4절), 예루살렘과 헤브론까지 쳐서 땅을 차지하였다.(8절-9절)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가나안 족속들을 넘겨주시어 다른 지파들도 그들을 쳐서 진멸케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 손에 넘겨주신 가나안 족속들을 전부 진멸하지못하고 19절,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21절,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29절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31절에 르홉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1장에서 쫓아내지 못했다는 말이 여덟번이 나올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그들의 손에 넘기신 가나안 족속을 전부 쫓아내지 못한 것이다.
결국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족속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기게되고 하나님을 떠나는 죄악에 빠지게되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않고 가나안족속을 다 진멸하지않고 쫓아내지 않았기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음을 발견한다.
사사기1장1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은 것이 아니다. 22절에도 요셉의 가문에게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다고 말씀하신다.
분명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도록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넘기시고 함께하셨다.
그러나, 19절을 자세히 보면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눈으로 보기에 철 병거가 있어 그들을 진멸하지못하고 쫓아내지 못할 것 같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또 하나님이 함께하심에도 믿음이 없어 순종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계서 쫓아내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정말 상반되는 하나님의 행동이지않는가?
가나안 족속을 다 쫓아내라고 명령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에 손에 넘기시고 함께하시기까지 하시면서 결국 하나님이 직접 가나안 족속을 다 쫓아내지 못하게 섭리하시고 역사하셨다는 것이다.
가나안 족속을 살려두고 남겨두면 분명히 그들의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날 수 있는 것을 아시기에 진멸하고 다 쫓아내라고 명령까지 하셨으면서 하나님께서 다 쫓아내지 못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2장23절에 "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그들을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주지 아니하셨더라.
3장2절 .....남겨두신 이 이방 민족들은....., 4절 ....남겨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하나님은 분명히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말고 놀라지말고 담대하라고 하시며 함께하심과 가나안 족속을 여호수아의 손에 붙이셨다고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위해 전부 다 붙여 주시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의 손에 모두 넘겨주시지 않으신 것이다.
왜 그러셨을까?
우리의 삶에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또 우리가 하나님보다 좋아하고 이기적이고 인간적인 것을 버리라고 명령하시면서 그것들을 우리의 삶에 남겨 두신다는 것이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만 바라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다른 이목꺼리를 남겨두신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죄에서 멀리하라고 명령하시면서 믿음이 연약하여 죄에 빠질 수 있는 환경들을 나두신다는 것이다.
주안에서 하나가 되라고 하시면서 하나가 될 수 없는 환경을 만드신다는 것이다.
주의 사랑으로 형제를 무조건 사랑하라고 명령하시면서 무조건 사랑할 수 없는 이유를 남겨두신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실까?
2장 22절에,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3장 2절,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하사 남겨두신 이방 민족들은, 4절, 남겨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하셨더라"
그 이유는, 다 쫓아내지 않고 남은 가나안 족속의 우상들을 섬기지않고 하나님만을 섬기는지 아니 섬기느지 시험하려하신 것이다.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다른 좋은 것들이 있음에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는지 시험하시기 위해서인 것이다.
죄에 쉽게 빠질 수 있는 조건이 있음에도 죄에 빠지지않나 보시려고 하신 것이다.
주안에서 하나가 될 수 없는 환경에서 하나가 되는지를 보려고 하시는 것이며, 주의 사랑으로 무조건 사랑할 수 없는 이유가 많음에도 사랑하는지 시험을 하려고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입으로만 믿음이 있고, 말로만 신앙이 있다고 하는지, 예수의 제자라고 하면서 행동이 없는 능력없는 믿음 생활을 하는지 아니면, 우리 안에 있는 예수의 마음으로, 진실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는지 시험하시며, 온전한 믿음을 갖겨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며 섭리인 것이다.
우리는 현재 처해있는 우리의 환경과 조건을 탓한다. 우리는 불평할 수 밖에 없는 조건과 나쁜 환경을 탓하기전에, 왜?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인지, 왜? 우리에게 남겨두신 것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분명한 뜻과 섭리를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남겨두신 환경과 조건 넘어의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볼수 있어야 한다.
주님, 주위의 환경을 보게 하지마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게하여 주옵소서.
주위의 조건과 환경에 집중하지않게 하시고 그 뒤에 있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보게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을 따라 살려는 모든 중앙 청년들에게.....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2011년 8월 2일 화요일
2011년 7월 20일 수요일
여리고 성벽이 무너져 내릴때 성벽 위의 라합의 집은?
드디어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여리고성을 6일간 하루에 한번씩, 그리고 7일째에는 7번을 돌고 나팔과 큰소리를 지르자 여리고성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이었으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싸우시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게되는 큰 은혜가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넘쳤다
여호수아 6:20 "이에 백성이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물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때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성을 점령하고"
하나님은 여리고성을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주었다고 말씀(여호수아6:2)하셨는데 왜 성벽을 무너뜨리는 방법으로 여리고성을 함락하게하셨을까?
바로 성문을 부수고 들어가 미리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시고 그안에 사람들을 칼로 치시고 더 쉽게 여리고성을 차지할 수 있었는데, 왜 성벽을 무너뜨리셨어야 할까?
사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어떤 방법이던지 여리고성을 함락할 수만 있다면 그 방법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수 도 있다. 목적은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여리고성을 함락하는 것이었기때문에 하나님의 어떤 방법이라도 그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라합을 생각하신 하나님의 선택이었지않았을까? 라합의 온 가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성벽위해 살고있던것을 아시면서 일부러 성벽을 무너뜨리지 않았을까?
여호수아2:15 "라합이 그들을 창문에서 줄로 달아 내리니 그의 집이 성벽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위에 거주하였음이라"
2명의 정탐군을 구해주고 그들로부터 죽임을 당하지 않고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있던 라합에게 이 성벽 위에 집에 있어 붉은 줄을 매달고 있으면 살 것이라는 생각을 뒤집으신 것이다.
그가 믿고 있던 성벽위에 집과 붉은 줄, 바로 성벽위에 집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던 정탐군을 성벽으로 도망보낼 수 있었고, 성벽에 붉은 줄을 내려 이스라엘백성이 침략하러올때 보이도록 할 수 있었던 정말 좋은 위치, 성벽 위의 집을 굳게 믿고 있었다.
라합은 정말 이 성벽위에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라도 하면서 바로 이 성벽위의 집에 살았기에 살 수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지않았을까?
그런데, 갑자기 성벽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옆에서 성벽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소리에 얼마나 무서웠고 두려웠겠는가?
바로 하나님이 여리고성을 함락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선택한 방법 곧 성벽을 무너뜨리는 일이 시작이 된 것이었다.
이제는 죽었구나 아니 오히려 성벽위에 집이 아니라 성안의 집에 살았더라면 살 수 있었을 것을 하면서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하필 왜 성벽을 무너뜨리며 이스라엘백성들이 들어오냐며 이제까지 성벽위에 집에 거주함으로 살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접고 옆에서 무너져내리는 성벽을 보며 눈을 감고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지는 않았을까?
그런데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며, 이제는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 할때, 굳게 믿고 있었던 성벽이 무너져 내릴때 하나님은 역사를 하고 계셨다.
라합과 그의 온 가족을 살리시기위해 모든 성벽은 무너뜨리되, 라합이 살고있는 성벽위의 집, 그 집을 떠 받치고있는 성벽은 무너뜨리지 않으신것이다.
상상을 해보면 양 옆 온주위의 성벽이 무너져내리는데 라합이 살고 있는 성벽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었다.
이얼마나 기적같은 일이며,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이신가? 단지 성벽위에 집에 있었기에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온 성벽을 무너뜨리는데 오직 라합이 있는 성벽만을 무너뜨리지 않음으로 하나님이 직접 보호하셔서 살수 있었음을 하나님께서 의지적으로 구원하시기위해 온 성벽이 무너지지만 라합의 성벽만을 무너뜨리지 않고 보전하신다는 것을 라합으로 보게하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붙들고 있는 것 때문에 살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 붙들고 있는 그 자체가 아닌 살아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우리가 가진 신앙, 생각, 주장, 믿음때문에 살 수 있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때문에 사는 것을 잊은채 그 신앙, 믿음, 주장을 붙들고 있기에 그것을 무너뜨리시는 것이다.
그가운데, 이방인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위해 온 성벽을 무너뜨리는 가운데 그가 살고 있는 그 성벽을 보호하신 것이다.
이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이제는 죽었구나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세상, 이곳이 다 무너져 내리는데 우리는 죽는구나 할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 무너져내리는 성벽가운데에서고 우리의 성벽만큼은 붙들고 계신것이다.
라합을 살리시기위해 살아 역사하시는 참 하나님을 보고 경험하게 하시기위해 성벽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선택하신 것이다.
주님, 우리 주위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립니다. 다들 죽는다고 합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이 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이 우리가 있는 곳, 이곳 만큼은 직접 보호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함께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이었으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싸우시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게되는 큰 은혜가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넘쳤다
여호수아 6:20 "이에 백성이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물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때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성을 점령하고"
하나님은 여리고성을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주었다고 말씀(여호수아6:2)하셨는데 왜 성벽을 무너뜨리는 방법으로 여리고성을 함락하게하셨을까?
바로 성문을 부수고 들어가 미리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시고 그안에 사람들을 칼로 치시고 더 쉽게 여리고성을 차지할 수 있었는데, 왜 성벽을 무너뜨리셨어야 할까?
사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어떤 방법이던지 여리고성을 함락할 수만 있다면 그 방법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수 도 있다. 목적은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여리고성을 함락하는 것이었기때문에 하나님의 어떤 방법이라도 그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라합을 생각하신 하나님의 선택이었지않았을까? 라합의 온 가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성벽위해 살고있던것을 아시면서 일부러 성벽을 무너뜨리지 않았을까?
여호수아2:15 "라합이 그들을 창문에서 줄로 달아 내리니 그의 집이 성벽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위에 거주하였음이라"
2명의 정탐군을 구해주고 그들로부터 죽임을 당하지 않고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있던 라합에게 이 성벽 위에 집에 있어 붉은 줄을 매달고 있으면 살 것이라는 생각을 뒤집으신 것이다.
그가 믿고 있던 성벽위에 집과 붉은 줄, 바로 성벽위에 집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던 정탐군을 성벽으로 도망보낼 수 있었고, 성벽에 붉은 줄을 내려 이스라엘백성이 침략하러올때 보이도록 할 수 있었던 정말 좋은 위치, 성벽 위의 집을 굳게 믿고 있었다.
라합은 정말 이 성벽위에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라도 하면서 바로 이 성벽위의 집에 살았기에 살 수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지않았을까?
그런데, 갑자기 성벽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옆에서 성벽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소리에 얼마나 무서웠고 두려웠겠는가?
바로 하나님이 여리고성을 함락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선택한 방법 곧 성벽을 무너뜨리는 일이 시작이 된 것이었다.
이제는 죽었구나 아니 오히려 성벽위에 집이 아니라 성안의 집에 살았더라면 살 수 있었을 것을 하면서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하필 왜 성벽을 무너뜨리며 이스라엘백성들이 들어오냐며 이제까지 성벽위에 집에 거주함으로 살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접고 옆에서 무너져내리는 성벽을 보며 눈을 감고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지는 않았을까?
그런데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며, 이제는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 할때, 굳게 믿고 있었던 성벽이 무너져 내릴때 하나님은 역사를 하고 계셨다.
라합과 그의 온 가족을 살리시기위해 모든 성벽은 무너뜨리되, 라합이 살고있는 성벽위의 집, 그 집을 떠 받치고있는 성벽은 무너뜨리지 않으신것이다.
상상을 해보면 양 옆 온주위의 성벽이 무너져내리는데 라합이 살고 있는 성벽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었다.
이얼마나 기적같은 일이며,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이신가? 단지 성벽위에 집에 있었기에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온 성벽을 무너뜨리는데 오직 라합이 있는 성벽만을 무너뜨리지 않음으로 하나님이 직접 보호하셔서 살수 있었음을 하나님께서 의지적으로 구원하시기위해 온 성벽이 무너지지만 라합의 성벽만을 무너뜨리지 않고 보전하신다는 것을 라합으로 보게하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붙들고 있는 것 때문에 살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 붙들고 있는 그 자체가 아닌 살아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우리가 가진 신앙, 생각, 주장, 믿음때문에 살 수 있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때문에 사는 것을 잊은채 그 신앙, 믿음, 주장을 붙들고 있기에 그것을 무너뜨리시는 것이다.
그가운데, 이방인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위해 온 성벽을 무너뜨리는 가운데 그가 살고 있는 그 성벽을 보호하신 것이다.
이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이제는 죽었구나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세상, 이곳이 다 무너져 내리는데 우리는 죽는구나 할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 무너져내리는 성벽가운데에서고 우리의 성벽만큼은 붙들고 계신것이다.
라합을 살리시기위해 살아 역사하시는 참 하나님을 보고 경험하게 하시기위해 성벽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선택하신 것이다.
주님, 우리 주위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립니다. 다들 죽는다고 합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이 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이 우리가 있는 곳, 이곳 만큼은 직접 보호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함께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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