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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4일 월요일

출 40장,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출애굽기 마지막장 40장은 성막을 다 짓고난뒤 성막을 봉헌하는 내용이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나하나, 작은 것 하나라도 그대로 다 행했다고(16절) 고백하며, 40장에서만 7번을 반복하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그대로 따라 순종하며 사는 삶가운데 하나님이 임하는 것이다.
33절에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마치매, 여기서 이같이는 여호와가 명령하신대로 행한대로 역사를 마쳤다는 것이며, 그때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던 것이다.(34절).

언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가? 바로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우리의 삶속에 이뤄가시는 뜻과 목적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때 그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가 충만한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할때 행진할 수 있고 머무를 수 있는 가고 섬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온전히 따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다 행해야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알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가지신 뜻과 목적 그것을 이뤄가시는 명령을 들어야 순종하고 그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그대로 행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을 대면하고 하나님과 대화를 했기에(33:11; 34:29) 하나님의 명령을 듣을 수 있었고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에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나? 어떻게 하나님의 명령을 들을 수 있고 알 수 있는가? 바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있는가? 모세는 40일 동안 음식도 물조차도 마시지않고(34:28)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다. 하루에 얼마나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고 있는가? 기도는 얼마나 하는가? 우리의 삶에 뜻과 목적을 두시고 이뤄가시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그의 명령대로 행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기도의 무릎을 달궈야한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해야하는 것이다.

아버지, 아버지와 깊은 교제를 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께 물으면 아버지께서 대답해주시고, 아버지와 대화하며 깊은 교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대화하는 기도를 하기를 원합니다. 내 삶의 모든 일에 깊에 관여하시고 충만한 임재를 경험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모든 일을 아버지와 상의하고 아버지께서 명령하시는 모든 것을 다 행하기를 원합니다.
말씀하여 주옵소서, 제가 듣겠습니다. 말씀하여 주옵소서, 제가 순종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0년 11월 29일 월요일

출16:13 만나는 진 주위에, 메추라기는 진에 덮으시고

예전에 출애굽기 성경공부를 하다 이 대목에 하나님의 섬세하시고 가장 적합하고 잘 맞는 방법으로 계획성 있게 일용할 양식을 이스라엘 백성에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심에 큰 은혜를 받아 다시 묵상하면서 우리의 일상에도 섬세하게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주님을 생각해 본다.

13절에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얼마나 하나님의 섬세한 배려인가?
아침에 이슬같이 진 주위에 내려주시는 만나, 광야에 먼지가 많은데다 2백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여 사는 진에는
숨 쉴수도 없을 정도의 먼지로 어떠한 환경인지를 잘 아시는 주님이 다들 잠든 새벽에 사람의 움직임이없고 먼지 날리지 않는 조용한 아침에 만나를 이슬같이 내리시어 깨끗하고 더렵혀지지 않은 만나를 먹이시려는 주님에 배려에 아니 놀랄 수 가 없다.
그것 뿐인가? 만나는 진 주위에, 진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내리셨다는 것은 어느 한쪽이나 진 위에 또는 메추라기를 보내시듯 진에 덮으시지 않고 1/4로  나누어 2백만의 백성들이 동,서,남북으로 각각 나누어 Caos가 생기지 않도록하시고, 또 모든 사람이 만나를 주으러 나가게 하지 않으시고 각 가족의 대표 한 사람이 나가 가족수대로 한 오멜씩 거두게 하셨다. 만약 이런 세심한 배려 없었다면 2백만명이 우루루 나가 먼저 거두려는 사람, 늦게 도착한 사람과 엉키고 섞여 싸우고 제대로 거두지도 못하고 오히려 발에 밟히는 것이 정작 거두는 것 보다 많아 만나를 먹어 보지도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매일 만나로 2백만명을 먹이시는 하나님의 계획성 있고 가장 현명하고 상황에 적합한 방법으로 내려주시고 먹이시는 배려에 한번 더 놀랐다.

메추라기는 땅에 굴을 파고 들어가는 생활하는 습관이 있으며, 날아다닐 수 있어 만나처럼 진 주위에 내시셨으면 메추라기를 잡느라 시간을 다보내고 결국 몇 마리 잡지도 못하는 경우가 생길 것을 우려하신 하나님이 저녁시간 그것도 식사시간에 가까이 진이 덮이도록 진안에 내려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의 각각의 텐트 앞에 날아가지도 못하고 슆게 잡을 수 있도록 진안과 진 위에 덮으신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주님의 세심한 배려인가?

하나님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이렇게 일용할 양식을 아주 세심하고 배려있게 또 계획성있게 배푸셨을까?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과연 우리의 육적, 영적 일용할 양식을 우리의 상황에 맞게, 나의 환경과 나의 형편과 나의 성격과 나의 취향과 나의 Style에 맞게 세심하고 배려있게 베풀어 주시지 않을까?
우리가 접하는 육적, 영적 일용할 양식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너무 편안하고 너무나 우리가 원하는 대로 취향대로 받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라고 생각은 해보았는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말로는 하면서 우리의 삶속에 이렇게 세심하고 배려있게, 계획성있게 우리에게 딱 맞게 영적, 육적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해 보았는가? 그렇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배가 불러 그렇게 세심하게 배려해서 내려주신 만나를 기름에 튀긴 단 과자로 하찮게 여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언제는 배고파 죽게 되었다고 하나님께 울부짖어놓고 이렇게까지 세심한 하나님의 배려에 당연한 것처럼 행동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가 한번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너무 우리에게 딱 맞기에, 너무 우리의 생활에 편안하고 원하는 대로, 좋아하는 대로 받기에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를 잊어 버리는 자가 되지 않기를 기도해 본다.

주님, 저의 이 초라한 삶속에 함께하시어 제게 꼭 맞고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내 환경에 맞게 제가 좋아하는 취향에 맞게 일용할 육적, 영적인 양식을 먹여 주시는 주님을 모르고 제가 잘해서, 제가 원했기에 된 것처럼 감각없이 감사없이 지냈던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주님의 세심하고 배려있는 공급과 인도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