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5일 월요일

성경공부 04/11

Tarea :
- Leer el cap. 14
- 자기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은?
- 언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이 앞과 뒤가 꽉 막혀있었던 적이 있는지?
- 진퇴양란(앞뒤가 꽉 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처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2010년 4월 4일 일요일

주님의 십자가, 내가 져야 할 십자가는?


부활절이라 청년들이랑 여지껏 항상 주님의 십자가만을 얘기하고 생각하는데, 우리 각자가 져야할 십자가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보지 못한 것 같아, 눅9:23 "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말씀을 묵상한 것을 같이 나누기를 원하며 :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져야할 십자가를 져야만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의미가 완전해 지는 것이다.

주님은 나를 따라 오려거든이란 전제로 1)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이 그랬듯이 십자가에 달리실 그 시간 만큼은 자신을 부인하셨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
- 이재훈이는 더이상 없다 내 삶에 오직 주님뿐이다, 
- 이재훈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 오직 주님에 의해, 주님을 위해 존재 한다,
- 이재훈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주님이 모든 일을 하셨다 라는 믿음이다.

2)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날마다" 중요하지, 그냥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 하시지 않고 날마다라는 형용사를 붙이셨을까?
날마다는 :
- 유효기간이 단 하루이기때문에, 그렇기에 우리는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
- 반복되어져야 하기에, 그렇기에 우리는 날다마 자기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
- 습관이 되야 하기에, (반복학습은 습관을 만든다),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기에.

그럼 각자가 지어야할 자기 십자가는 무엇인가?
- 좋던 싫던 내가 지어야할 십자가./ 이잔을 지나가게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 내가 태어나고, 살아야 할 목적을 주는 십자가./예수님의 태어나신 목적, 영혼구원의 목적을 이루게 한 십자가처럼
- 하나님이 내 삶에 주신 뜻을 이루기위한 필수적인 고통의 십자가./ 인류를 사랑하시어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위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의 주님의 외침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져야만이 주님을 따를 수 있음을 되새기며,
자신이 져야할 십자가를 알때에 비로서 영혼 깊은곳에서 흘러 나오는 진정한 평안과 내려놓음을 통한 주님의 전적인 인도하심을 경험할 수 있다.그렇게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각자가 어렵고 힘들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을때 주님을 따르는 진정한 주님의 제자로 십자가를 지기를 기도하며,
그리할때 좋으신 주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는 말씀으로, 결국 우리의 십자가 마저 주님이 대신 져주시는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2010년 3월 29일 월요일

Estudio Biblico 2010/04/04

- Leer el cap. 13
- Ver la película : El libro de los secretos (The book of Eli) y 하나님은 Eli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생각해오기
- 왜 하나님은 가까운 길을 나두고 먼 광야길로 축복의 땅 가나안을 인도하시는지 생각해오기

2010년 3월 22일 월요일

Estudio Biblico 2010/03/28

Para el domingo :
- Leer el cap. 12
- 2절, 애굽에서 나오는 날을 이스라엘의 달의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했을까?
- 어린양이 의미하는 것은?

2010년 3월 21일 일요일

다니엘서 3장 16-18절 묵상

아무도 글을 올리지 않았네? 성경공부가 없었어도 말씀 묵상은 했겠지?

우리가 다아는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가운데 던지움을 당할때 고백했던 말씀 18절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어떤 믿음으로 아니 어떤 마음으로 그런 담대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하고 부러우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사드락, 메삭 그리고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왕이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저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라고 물을때:
16절에"......우리가 이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라고 대답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내실 겁니다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절하지 않겠나이다" 이전에 이런 대답을 한 믿음이 바로 이 담대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겠끔 했다.

지금까지 포로생활에서 지켜주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배은망덕할 수 없는 마음으로 이대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신앙, 하나님의 이제까지 지켜주신 은혜에 신상에절을하면서까지 목숨을 부지 하지 않겠다는 믿음으로 대답할 가치 조차도 없다는 믿음인 것이다.

그것은, 첫째 믿음은 과거, 현재와 미래를 맡기는 것이다. 둘째 믿음은 과거를 지켜주신 하나님이 현재와 미래를 지켜주시리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셋때 믿음은 과거를 지켜주신 하나님에 대해 현재가 주어지지 않아도, 미래가 주어지지 않아도 감사하겠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인 것이다.

여러분의 과거를 인도하시고 지켜주셨다 믿습니까? 그럼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지켜주실 것입니다. 맡기십시요. 아니 현재와 미래를 주시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대답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2010년 3월 8일 월요일

Estudio Biblico 2010/03/14

Para el domingo :

- Leer el capitulo 11.
- 고난은 변장된 하나님의 축복이다(sufrimiento, prueba es un camouflage de la bendicion de Dios)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
- 하나님의 축복을 금송아지와 바꾼적인 있는지? 문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나서다. 왜그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