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8일 목요일

영혼의 갈급함을 해소하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물을 사먹어야한다.


영혼의 갈급함을 해소하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물을 사먹어야한다.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영혼이 갈급한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영혼의 갈증을 해소할 은혜의 물가로 오라고 초청하고 계신다. 그러면서 돈 없는 자도 오라고 하시면서 사먹으라고 하신다. 다시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조주와 젖을 사라고 하신다.

돈 없는 자에게 그냥와서 돈이 없으니 공짜로 먹으라고 하시지 않고 사먹으라고 하신다. 아니 사주신다고 하지않으시고 직접 사먹으라고 하신다.

어떻게 돈 없는 사람이 물을 사서 먹을 수 있는가?

돈없이 사먹으라는 말은,
첫째 돈이 없어도 살수가 있다는 말이고,
둘째 돈이 없어도 사서 먹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럼, 누가 돈을 대신 내주시는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대신 돈을 지불하시기에 우리가 돈이 없어도 돈을 내고 사는 것같이 사 먹을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물값을 지불하시면서 와서 하나님께서 사주시니 그냥 공짜로 먹기만하라고 하시지않는 다는 것이다.
돈이 없으니 와서!, 그리고 사먹으라! 하신다.

그렇다,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이 대신 돈을 지불하시면 조용히 가서 공짜로 물을 먹는 것,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을 원치않으시고 능동적이며 적극적으로 돈은 없지만 값없이 사먹어야한다는 것이다.

11:12 “세례요한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말씀한다.

왜 천국을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했는가?
즉 구원받은 신앙인의 삶은,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게되지만 그냥 주님의 이름만 부르는 수동적인 자세로 구원을 받고 그 구원을 잃어버린듯 살아가는 것이아니라는 것이다. 은혜로 받은 구원을 값없이 사겠다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그 구원을 붙들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값없이 산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천국을 침노하는 자의 것처럼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신앙의 자세를 요구하고 계시는 것이다.

영혼의 갈급함을 해소하는 것도 같은 의미에서, 더이상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면서 모든 것을 공짜로 다 해주시기를 바라고 앉아있지말고 하나님의 은혜의 강이 흐르는 물로 가서 값없이 사야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사서 우리의 영혼의 목마름을 해소시켜야하는 것이다.

이제는 앉아있는 자리에서 영적으로 일어나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적극적인 신앙의 삶을 살아가야한다.

4:16 :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2013년 3월 18일 월요일

베드로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나?


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필리아로 사랑했는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돌아가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삶으로, 고기를 잡으로 간다며 갔고 여러 제자들도 그를 따랐다.
베드로를 사람낚는 어부로 부르셨지만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그는 다시 이전 삶으로 돌아갔을때 그 고기 잡는 자리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가셔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며 처음에 베드로를 부르셨을때의 역사를 다시금 베풀어 주시고 베드로에게 친히 물으시기를 이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다.

원문에는 이사람들보다“toutwn”으로 되어 있다. 지시 대명사인 “outos”의 여격 복수인 즉 이것들보다라는 뜻인 것이다.
그렇다 이 사람들보다라고 할때는 당시 그주위에는 베드로를 따라온 몇몇의 제자밖에 없었다. 베드로는 자기와 같이한 그 제자들을 예수님보다 사랑하고 있던 것이 아니며 예수님도 그것을 물으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람낚는 어부로 부르시고 3년반동안 가르치시고 제자로 키우셨는데 베드로는 다시 이전의 삶으로,고기낚는 어부로 전락하여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가 원하는 이전의 삶인 고기 잡는 것 즉 이 고기들보다예수님을 더 사랑하냐고 물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낚는 어부의 마음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냐고 물으셨으나 베드로는 고기낚는 어부의 마음인 필리아의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그리고 그것을 예수님이 아신다고 고백한다.(15-17). 베드로는 그렇게 그의 부족한 내면을 보여드렸던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결국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남이 그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고(18) 말씀하시면서, 19절에 다시 나를 따르라 하시며 다시 사람낚는 어부가 되기를 초청하고 계시는 것이다.

왜냐면 예수님은 베드로가 비록 자신의 초라하고 부족한 모습속에 그렇게 밖에(필리아의 사랑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사랑할 수 없다고 했지만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어 그의 남을 삶을 아가페의 사람으로 살 것을 아셨던 것이다.(19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켜심이러라…”)

결국 베드로의 예수님의 마지막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에 순종하고 비록 예수님의 말은 필리아의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했지만 삶으로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십자가에서 어떻게 예수님께서 바로 돌아가셨는데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거꾸로 달려 죽음을 맞는다. 자신의 목숨을 예수님을 위해 드리며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을 이루었던 것이다.

베드로는 끝네 삶으로 예수님을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였다. 오늘 이시대 베드로와 같이 말로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못하더라고 아니 말로는 더이상 사랑한다고 하지말고 삶으로 예수님을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사는 주의 진정한 제자가 필요한 것이다. 주님 그런 제자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2013년 3월 14일 목요일

예수님을 위하는 것이란?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은?

14:6
예수께서이르시되 가만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의 옥합을 예수님의 머리에 붓자 가롯유다가 그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을 허비한다며 책망할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14:1-6)

이 여인의 행동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좋은 일을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비해 가롯 유다는 허비한 것이라고 말한다.
같은 일을 보고 예수님과 가롯 유다의 반응이 대조적이며, 이 여인을 보는 관점이 달랐다.

관점의 차이의 시작은 매우 값진 향유라는 데서 발생한다.
만약 매우 값진 향유가 아니었다면 유다는 그래도 이 여인을 책망했겠는가?

매우 값진 향유라함은 이 여인에게는 전 재산이요, 전 삶이요, 여인의 모든 것이요, 인생의 희망이요 미래인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여인이 그것을 예수님께 드렸다
자신의 전 인생을 드린 그녀에게 예수님이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고”말씀하셨다.  인생에 가장 귀하고 값진 일을 했다고, 당연히 한 인생으로써 해야할 일을 했다고  칭찬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나 가롯유다는 인생에 가장 고귀하고 값진 것을 가지고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그녀가 그 귀한 향유전부를 예수님께 드렸다는 것에 분노했다.

계산적으로나 이치적으로나 그 값진 향유를 팔면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고 큰 일을 행할 수 있으며 더 값진 일을 할 수 있는데 단번에 예수님께 쏟아 붓는 일을 보고 허비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예수님에게 좋은 일, 예수님을 위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귀한 것을 드리면서 또 주의 일을 하면서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많다. 사실은 자신을 위한 것임을 숨긴채 말이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은 그를 위하는 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많이 하고 희생하고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모든 것,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

사실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 여인을 책망하며 그 비싼 항유를 허비한 것에 분노했지만 그 마음의 중심에는 자기를 위한 것이었기에 화가 나있던 것이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12:6

결국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는 명분으로 말했던 그가 막14:11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일을 하게된다.
예수님에게 좋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팔아 넘기를 해가되는 일을 하게된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는 명분으로 무언가를 할때 마음 깊은 곳의 자신의 의를 드러내거나 자신의 어떤 이익을 위한 것을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예수님에게 해가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주님의 일이요, 사역이요, 선한 많은 일이라 할지라도.

매우 값진 향유인생의 전부를 예수님에게 드리는 것이 예수님을 위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내 맘대로 내 인생을 설계하고 사용하면 않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가장 값진 것을 우리의 인생을 그분에게 드리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