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아들이자 밧세바의 아들인 솔로몬와은 우리가 다 아는대로 당대에 아니 전무후무한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린 왕이었다. 분명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부어주셔서 그가 그 모든 것을 누린 것이다.
일천번제를 드린 솔로몬왕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주실까 물을때 우리는 지혜를 구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부귀영화를 구하지않고 백성을 잘 다스리기위한 지혜를 구한 착한 솔로몬왕에게 지혜는 물론 구하지않은 부귀영화를 주셨다고 우리는 배워왔다. 맞는 말씀이다.
그러나, 좀더 깊이 말씀을 이해해보면 솔로몬왕이 실제적으로 구한 것은 지혜가 아닌 "듣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개혁개정 성경에 열왕기상 3장9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이전 성경 개혁한글에는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헤로운 마음을 주사...."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지혜 자체를 구한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마음", "듣는 마음"을 달라고 구한 것이다.
지혜를 구하는 것과 지혜로운 마음 또는 듣는 마음을 구하는 것에 무엇이 다른가?
지혜를 구한다는 것은 그 받은 지혜로 일어난 일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 즉, 재판을 잘 하겠다는 것이지만,
듣는 마음이란 재판을 하기위한 수단보다는 판단과 재판을 하기 이전에 잘못을 정죄하고 징계하는데 촛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죄를 질 수 밖에 없었는지, 바로 살아야 하는 줄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쉽게 무너지고 잘못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는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유혹에 넘어갔는지, 각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고 귀를 열어 듣고 각각의 형편을 잘 해아리겠다는 것이다.
자로 줄을 제고 저울로 무게를 재겠다는 지혜가 아닌 각 사람의 형편과 사정,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아 이해하려는 너그러운 마음, 곧 듣는 마음을 달라고 솔로몬왕은 구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며 자기 백성의 각 환경과 형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며,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려는 긍휼의 마음인 것이다.
솔로몬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달라고 구한 것이다.
그래서, 3장10절에 "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개혁 한글에는 ".....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가진 솔로몬의 요구에 흡족해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달라는 솔로몬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이 기쁘게 보신 것이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달라고 구한 솔로몬이 얼마나 이쁘고 자랑스러우셨으면 그가 구하지 않은 부귀영화까지 주셨겠는가?
신약에서도 예수님은 마태복음 6:33-34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기에 구하지 않은 모든 것들로 더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혜를 구한다.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에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맞는지 맞지않는지 알기위해 지혜를 달라고 한다.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하면서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어떻게 실수하지 않고 결정을 잘해야할 지를 구하고 있다.
우리가 잘 하고자 하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지, 하나님의 마음을 달라고 구해야하지 않을까?
주님!, 오늘도 주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듣는 마음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동일한 마음을 가지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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