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명보다 그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에 모든 촛점과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분명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은 중요하고 반듯이 지켜야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명에만 집중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사소하게 명령하신 것에 소홀할 수가 있다.
하나님은 사실 사명보다 더 관심이 있는 것은 그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곤한다.
열왕기산13장에 보면 한 하나님의 사람이 나온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세우셔서 그에게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의 왕에게 가서 심판을 경고하고 그가 세운 산당과 우상들을 심판하시리라는 말씀을 전하라는 큰 사명을 받았다.
유다에서부터 벧엘에까지 가서 마침 제단에 서서 분향하는 여로보암을 향해 하나님께서 그의 입에 주신 경고와 징계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한다.
열상13장 2절 "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아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다가 붙잡혀 줄을 수도 있었지만 목숨도 감수하고 하나님의 사명을 잘 이행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중대한 사명을 주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지친 몸을 다시 이끌고 절대 떡이나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도 되돌아가지 말고 떠나라고 명령하셨다.
열상13장8절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 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9절에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셨음이니이다하고"
여로보암왕은 하나님의 징계의 말씀에 두려워 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거둬달라 기도를 부탁을 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 하나님의 사람을 붙들고 집에 가서 쉬라하며 예물을 받아주기를 청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정말 여로보암의 유혹을 잘 물리치고 넘겼다.
아니 그 상황을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는지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잘 감당했으니 힘들고 지치고 두려웠던 그 상황을 빨리 모면 하고 싶었을 수 도 있다.
그렇게 그는 빠른 걸음으로 그 곳을 빠져 나왔지만 지쳐있던 그 하나님의 사람이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을때 문제가 터지고 만다.
열상13장14절 " 하나님의 사람을 뒤따라가서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은 것을 보고 이르되 그대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냐 대답하되 그러하다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
11절에 보면 " 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더니..." 바로 이 늙은 선지자가 이 하나님의 사람을 유혹한 것이다. 왜 늙은 선지자였는가, 늙었다는 말은 나이가 늙었기 때문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지 오래되었다는 뜻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과으 교제, 교통이 없어 나이만 먹어 늙었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왜냐면 그는 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거짓으로 자기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 하나님의 사람을 집으로 데려가라고 했다고 말하고 있다. 열상 13장18절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시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안그래도 지쳐있고 굶주린 그에게 이 늙은 선지자의 말은 정말 호의적인 말이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렸다. 사소해 보였지만 하나님이 거기에 남아서 떡을 먹지도 물을 마시지도 말라고 분명히 명령하셨는데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소홀히 여기게 되고 아니 굶주림과 지친몸때문에 기억 조차도 못하고 있었는지도...
여기서 두가지의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첫째 이 늙은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선지자라도 하나님과 일상에서의 깊은 교제가 지속되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 남을 실족시키며 죄를 짓게하는 처지에 갈 수 밖에 없다는 거이며, 둘째로는 이 하나님의 사람처럼 하나님은 자신이 주시는 사명도 중요하지만 그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사명자는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명은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께서 이루시지만 그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은 어떻게 또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순종하는지는 그 사람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사람이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았으면 또 다른 사람을 보내셨을 것이고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경고와 징계의 말씀을 분명히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려고 그 하나님의 사람을 택하시고 세우실때는 그 사람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하는지를 보시려는 것이다.
왜냐면 하나님은 사명보다 그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기때문인 것이다.
그것을 몰랐던 이 하나님의 사람은 결국 늙은 선지자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치 못하게 되고 결국 그는 돌아가는 길에 사자에게 물어 뜯게 죽게되는 비참한 결과를 맞게된다.
열상13장 24절 "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그를 만나 물어 죽이매 그의 시체가 길에 버린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서 있고 사자도 그 시체곁에 서 있더라"
우리는 하나님께 사명을 달라고 구한다. 또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정작 그 사명에 앞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하는 마음과 믿음이 없다면 그 사명을 잘 감당한들 하나님께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명감당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주님, 사명감당하기에 두렵고 떨립니다. 분명 사명을 잘 감당해야합니다. 그러나 사명 감당에 앞서 이 사명을 주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세우시지만 이 사명보다는 우리에게 더 관심이 있음을 잊지않게 하옵소서. 사명보다는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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