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왕의 기도의 응답을 받는 형통함
요셉의 삶을 형통하게하셨던 하나님은 히스기야왕의 삶도 형통하게하셨다고 성경은 말한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열왕기하18장7절
요셉과도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히스기야왕과 함께하시며 그의 삶을 형통케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이 히스기야왕의 삶을 형통하게 하신 것은 6절에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라고 하면서 그가 하나님과 연합한 삶을 살았기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고 그의 삶이 형통했다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통은 모든 일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7절에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7절 말씀이 형통하였더라라고 끝맺지않고 이어서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아니하였더라말하고 있다.
얼핏보면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고 했으니 그가 당시 이스라엘을 무너트리고 유다까지 유협하고 있는 앗수르왕 산헤립을 배신하고 섬기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형통함을 주시겠다라고 생각을 하지만 정 반대로 그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게된다.
13절-16절, 앗수르왕 산헤립은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읍을 쳐서 점령하고 조공을 받치기 위해 하나님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주고 성전의 문과 기둥에 입힌 금도 벗기어 주었으며, 산헤립왕은 절대로 여호와가 자기의 손에서 건져내지 못할 것이라고 하나님을 비난하였으며 백성들에게까지 히스기야의 말을 믿지말라며 완전히 그를 비방하며 그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지경까지 가게되는데 이 어찌 형통한 삶이며 길이란 것인가?
하나님과 연합하여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그의 삶을 형통하게 하셨다고 하는데 그럼 어떤 형통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은 어떤 형통을 그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통은 아무것도 않해도 모든 일이 저절로 다 잘되는 기적같은 형통이 아니라 비록 하나님를 떠나지 않고 그의 말씀대로 살기때문에 어려움과 고난을 겪지만 하나님의 뜻가운데 그를 신뢰하고 기도할때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주시며 그 기도의 답을 주시는 형통함을 얘기하는 것이다.
앗수르왕 산헤립이 하나님과 히스기야왕을 비방하는 편지를 사자의 손에 보내자 히스기야는 열왕기하19장14절,15절에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히스기야가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고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히스기야는 하나님과 자신을 비방하는 그 편지를 펼쳐두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먼저 한 것은 그 손에 쥐어진 편지, 그 문제 그 어려움을 붙들고 하나님께 기도를 한 것이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앗수르왕 산헤립 때문에 내게 기도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19장20절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과 연합하여 함께하는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형통함이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형통함인 것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질 않아도 원하는 대로, 정한 소원대로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이 형통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과 고난안에서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 형통을 얘기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35절에 "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명르 친지라 아침에 일찌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그리고 산헤립왕도 결국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의 칼에 맞게 죽게된다.(37절) 그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
히스기야왕은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 형통함을 얻게되었다.
또 한번 하나님의 형통함을 누렸던 일은 다 잘아는 그의 생명을 연장시키신 일이다.
20장에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겠다고 집을 정리하라고 하실때 2절에"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5절에"...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신다.
형통한 삶을 살고 싶다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 연합한 삶을 살아야한다. 그래야 어떤 환경과 어려움에도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 형통함을 얻게된다는 것이다.
왜 우리의 기도에 응답이 없는가? 우리의 삶이 생각대로 잘 안풀린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함이 없기때문인 것이다. 하나님과의 연합함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필요할때만 기도하여 어려움을 해결해 주십사하는 기도가 아닌 하나님과 연합하여 함께하는 하나님 뜻안에서의 삶, 그 속에서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형통함을 경험해야한다.
아버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가운데서 살게 하여주옵소서
그리하여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뜻안에서 기도할때 응답해주시고 삶을 인도해주시는 형통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을 따라 살려는 모든 중앙 청년들에게.....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2011년 12월 30일 금요일
2011년 12월 16일 금요일
"그 청년 바보의사 - 안수현"
얼마전에 읽은 "그 청년 바보의사 - 안수현" 책에 대해 받은 감동에 대해 나눌까한다.
메마른 이 시대에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에게 맡겨주신 영혼을 그의 목숨보다도 더 사랑했던 청년, 그의 삶의 전체가 예수님께 온전히 헌신되어 최우선을 예수님께 맞쳐 살았던 바보같은 고안수현의사에 대해 벅차고 감동된 마음으로 또 내 자신이 부끄럽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의 짧은 삶을 전개한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한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모든 시간과 삶을 받쳐 예수님 처럼 살다가 예수님의 나이 33세로 주님 품으로 돌아간 청년 의사 아니 청년 바보의사 안수현. 그의 삶은 정말 24시간 온전히 예수님만 생각하며 예수님을 위해 또 예수님 처럼 살았던 바보 같은 의사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바로 '참 의사'였기때문입니다. 환자의 살이 베일때 아프겠거니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베인 것처럼 아파하기한 쉽지않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파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마치 자신의 생명처럼 귀히 여기고 아끼고 사랑했습니다.>pag.9-시골의사 박경철이 안수현 의사를 생각하며....
그 어려운 의과 공부를 하는 의대생으로써 자신의 잠을 줄여가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이라 생각하며 성경공부 리더와 찬양팀 리더의 사역외 많은 일을 감당했으며, 시험기간이나 중요한 학과 모임보다는 하나님 앞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붙들며 남들의 조롱에도 또 바보같다는 비아냥에도 묵묵히 그의 사명을 감당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일이 더 중요했기에 재수를 하며 힘든 과정을 지나면서도 오직 그의 삶의 최우선은 예수님이라는 신앙으로 예수님께만 집중을 하며 살았다.
인턴과 레지던트시절에도 고대 안암병원을 다니며 암 환자들의 병 치료는 물론 환자들을 치료하는 영혼의 의사 역활까지 담당했다. 아니 영혼 의사가 우선이었다. 그는 항상 손에 신앙서적과 찬양 테이프를 들고 다니며 병으로 낙심하고 절망에 빠진 환자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그들의 손과 발이되어 그들의 병은 물론 영혼을 살리는데 모든 시간을 투자하고 그가 의사로써의 존재 목적으로 삼았다.
<그 청년의사는 환자와 눈이 마주치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눈도 안마주치고 할 말만하고 휙 돌아서는 그런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많이 아프시냐고 묻기도 하고, 빨리 처치를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웃어주기도 하고, 간호하는 아들이 잘 생겼다고 덕담도 해주었습니다. 또 입원 첫날부터 한 밤중이면 찾아와 환자의 침대 곁에서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하루는 간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한 할아버지가 갑갑증을 느껴 죽으면 그만이지 하며 링거바늘을 빼버리고 행패를 부리며 병실 바닥에 피로 물들게 하며 난동을 부릴때 이 청년 의사는 할아버지를 끌어 안으며 "할아버지 힘드신 거 다 알아요. 살기 싫으신 것 다 알아요"하며 그의 마음을 위로하자 할아버지는 황소처럼 목 놓아 오래오래 울었습니다.> pag.16
그 청년 바보 의사는 직업으로써의 의사가 아닌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진정 환자들을 사랑하고 그 영혼을 사랑하는 참 의사였던 것이다.
그가 치료하는 모든 환자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돌보고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비록 육신은 병들어 죽어가지만 영혼은 살아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 그들을 진정 사랑했습니다.
그는 항상 "내가 사람에게 좋게하랴 내가 하나님께 좋게 하랴 내가 사람의 기쁨을 구한다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를 되새기며 삶의 주인되신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결정과 말과 행동을 실천했던 사람이었다.
2000년 8월 의약분업으로 의료계가 파업중으로 전국의 모든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 환자들만을 방치해 두고 있을때 그는 모든 의사들의 눈초리와 그 뒤에 감당해야할 책임과 비판에는 관심없이 그는 안암병원을 홀로 지키며, 아픔을 호소하며 의사의 도움을 필요로하는 환자들에게 밤을 새며 돌보아주고 복음을 전했다.
그렇게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에게 맡겨주신 영혼들을 사랑하며 살았던 그 청년 바보 의사 안수현.
2005년 11월 유행성출혈열에 감염되어 결국 2006년 1월5일 폐출혈과 위장출혈이 시작되면서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예수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는 어딜 가나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당당하게 드러냈습니다. 글을 쓸 때도, 사람을 만날때도, 무얼 먹거나 마실때도, 그는 한결같이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알려지면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 확실해도 그는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겐 그는 '밥맛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밥 맛없는' 그가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면 사람들이 신뢰했습니다. 그는 어디에 가도 그 빛을 잃지 않는 푸른 나무였고, 요동하지 않고 성전을 떠받치고 서있는 대들보였습니다.>
<그는 새벽예배를 사랑했습니다. 목사님 말씀이 끝나면, 단 위에 올라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큰 몸을 구푸려 머리를 땅에 대고 기도를 했습니다. 재수생 시절부터 그의 몸에 밴 기도 자세였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면서 세상을 거스르며 나갈 힘을 얻었습니다. 마치 오직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한 방향으로 오래 순종을 하며 걸어가는 순례자처럼....>pag.227
메마른 이 시대에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에게 맡겨주신 영혼을 그의 목숨보다도 더 사랑했던 청년, 그의 삶의 전체가 예수님께 온전히 헌신되어 최우선을 예수님께 맞쳐 살았던 바보같은 고안수현의사에 대해 벅차고 감동된 마음으로 또 내 자신이 부끄럽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의 짧은 삶을 전개한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한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모든 시간과 삶을 받쳐 예수님 처럼 살다가 예수님의 나이 33세로 주님 품으로 돌아간 청년 의사 아니 청년 바보의사 안수현. 그의 삶은 정말 24시간 온전히 예수님만 생각하며 예수님을 위해 또 예수님 처럼 살았던 바보 같은 의사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바로 '참 의사'였기때문입니다. 환자의 살이 베일때 아프겠거니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베인 것처럼 아파하기한 쉽지않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파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마치 자신의 생명처럼 귀히 여기고 아끼고 사랑했습니다.>pag.9-시골의사 박경철이 안수현 의사를 생각하며....
그 어려운 의과 공부를 하는 의대생으로써 자신의 잠을 줄여가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이라 생각하며 성경공부 리더와 찬양팀 리더의 사역외 많은 일을 감당했으며, 시험기간이나 중요한 학과 모임보다는 하나님 앞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붙들며 남들의 조롱에도 또 바보같다는 비아냥에도 묵묵히 그의 사명을 감당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일이 더 중요했기에 재수를 하며 힘든 과정을 지나면서도 오직 그의 삶의 최우선은 예수님이라는 신앙으로 예수님께만 집중을 하며 살았다.
인턴과 레지던트시절에도 고대 안암병원을 다니며 암 환자들의 병 치료는 물론 환자들을 치료하는 영혼의 의사 역활까지 담당했다. 아니 영혼 의사가 우선이었다. 그는 항상 손에 신앙서적과 찬양 테이프를 들고 다니며 병으로 낙심하고 절망에 빠진 환자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그들의 손과 발이되어 그들의 병은 물론 영혼을 살리는데 모든 시간을 투자하고 그가 의사로써의 존재 목적으로 삼았다.
<그 청년의사는 환자와 눈이 마주치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눈도 안마주치고 할 말만하고 휙 돌아서는 그런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많이 아프시냐고 묻기도 하고, 빨리 처치를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웃어주기도 하고, 간호하는 아들이 잘 생겼다고 덕담도 해주었습니다. 또 입원 첫날부터 한 밤중이면 찾아와 환자의 침대 곁에서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하루는 간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한 할아버지가 갑갑증을 느껴 죽으면 그만이지 하며 링거바늘을 빼버리고 행패를 부리며 병실 바닥에 피로 물들게 하며 난동을 부릴때 이 청년 의사는 할아버지를 끌어 안으며 "할아버지 힘드신 거 다 알아요. 살기 싫으신 것 다 알아요"하며 그의 마음을 위로하자 할아버지는 황소처럼 목 놓아 오래오래 울었습니다.> pag.16
그 청년 바보 의사는 직업으로써의 의사가 아닌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진정 환자들을 사랑하고 그 영혼을 사랑하는 참 의사였던 것이다.
그가 치료하는 모든 환자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돌보고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비록 육신은 병들어 죽어가지만 영혼은 살아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 그들을 진정 사랑했습니다.
그는 항상 "내가 사람에게 좋게하랴 내가 하나님께 좋게 하랴 내가 사람의 기쁨을 구한다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를 되새기며 삶의 주인되신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결정과 말과 행동을 실천했던 사람이었다.
2000년 8월 의약분업으로 의료계가 파업중으로 전국의 모든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 환자들만을 방치해 두고 있을때 그는 모든 의사들의 눈초리와 그 뒤에 감당해야할 책임과 비판에는 관심없이 그는 안암병원을 홀로 지키며, 아픔을 호소하며 의사의 도움을 필요로하는 환자들에게 밤을 새며 돌보아주고 복음을 전했다.
그렇게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에게 맡겨주신 영혼들을 사랑하며 살았던 그 청년 바보 의사 안수현.
2005년 11월 유행성출혈열에 감염되어 결국 2006년 1월5일 폐출혈과 위장출혈이 시작되면서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예수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는 어딜 가나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당당하게 드러냈습니다. 글을 쓸 때도, 사람을 만날때도, 무얼 먹거나 마실때도, 그는 한결같이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알려지면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 확실해도 그는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겐 그는 '밥맛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밥 맛없는' 그가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면 사람들이 신뢰했습니다. 그는 어디에 가도 그 빛을 잃지 않는 푸른 나무였고, 요동하지 않고 성전을 떠받치고 서있는 대들보였습니다.>
<그는 새벽예배를 사랑했습니다. 목사님 말씀이 끝나면, 단 위에 올라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큰 몸을 구푸려 머리를 땅에 대고 기도를 했습니다. 재수생 시절부터 그의 몸에 밴 기도 자세였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면서 세상을 거스르며 나갈 힘을 얻었습니다. 마치 오직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한 방향으로 오래 순종을 하며 걸어가는 순례자처럼....>pag.227
2011년 12월 2일 금요일
무심코 한 일이 바로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이었다
무심코 한 일이 바로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이었다
이스라엘 아합왕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기를 하나님께서는 의지적으로 정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열상16장30절) 그는 결국 하나님께서 그의 삶의 마지막을 정하시고 뜻 하신대로 그의 생명을 거두어 가셨다.
하나님의 뜻과 의지에서 벗어날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 계획과 지혜를 짜내어 그 상황을 모면하려해도 결국 하나님의 뜻을 피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생명을 주시기도 하시면 거두어 가시기도 하시는 생명의 주관자이시기에 그의 뜻대로 의지대로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아합왕은 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같이 길르앗 라못을 되찾기 위해 아람의 군대와 더불어 싸우러 나가면서 미가야 선지자가 전한 그가 전장에서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합왕은 왕복을 벗고 변장한 후 나갔으나 적군 한 사람이 무심코 쏜 화살이 갑옷 솔기(두 쪽을 이은 선)에 맞고 결국 죽게 된다.(열상22장34절)
유다의 왕 여호사밧은 왕복을 입고 나갔음에도 죽임을 당치 않았으나 죽음에 두려워 변장까지하고 나간 아합왕은 하나님께서 의지적으로 그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기를 결정하셨기에 무심코 활을 당겨 쏜 화살이 아합왕을 맞췄는데 그것도 갑옷을 맞혀서는 죽지않으니 갑옷의 압쪽과 뒷 쪽을 연결하기위해 이은 실, 그 사이 (아마도 어깨나 옆구리)에 맞아 죽게된 것이다.
무심코 당긴 화살을 하나님께서는 그 화살을 정확히 갑옷의 가장 약한 부분 생명을 위협할 부분에 가서 꽂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일을 인간이 어찌 바꿀 수 있겠는가?
인간은 이렇게 어리석은 것이다. 이미 정하신 하나님의 의지를 인간의 힘으로 바꾸고, 지혜로 모면하려는 가장 바보스러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합왕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일에서 돌이키는 것이 더 빠르고 확실한 방법임을 모르고 하나님의 뜻과 의지에 대항하려는 어리석은 우리가 아닌지 돌이켜 봐야할 것이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나님의 뜻과 무관한)이 아닌 선(하나님의 뜻과 일치한)을 행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행하는 삶을 살지 못하면서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의 지혜와 능력으로 바꾸어 보려는 노력을 하는데 결국 하나님은 의지대로 무심코 한 사람의 내 던진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연 같고, 무심코 일어난 일들 같지만 하나님의 깊이 개입하심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지는 않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유심히 들여다 보면 무심코가 결코 무심코가 아닌 우리의 삶에 깊이 관여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인 것을 우리는 느끼며 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과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삶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 우리의 삶에 깊히 개입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시는 일을 보게하시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하시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삶을 살게하여 주옵서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스라엘 아합왕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기를 하나님께서는 의지적으로 정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열상16장30절) 그는 결국 하나님께서 그의 삶의 마지막을 정하시고 뜻 하신대로 그의 생명을 거두어 가셨다.
하나님의 뜻과 의지에서 벗어날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 계획과 지혜를 짜내어 그 상황을 모면하려해도 결국 하나님의 뜻을 피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생명을 주시기도 하시면 거두어 가시기도 하시는 생명의 주관자이시기에 그의 뜻대로 의지대로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아합왕은 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같이 길르앗 라못을 되찾기 위해 아람의 군대와 더불어 싸우러 나가면서 미가야 선지자가 전한 그가 전장에서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합왕은 왕복을 벗고 변장한 후 나갔으나 적군 한 사람이 무심코 쏜 화살이 갑옷 솔기(두 쪽을 이은 선)에 맞고 결국 죽게 된다.(열상22장34절)
유다의 왕 여호사밧은 왕복을 입고 나갔음에도 죽임을 당치 않았으나 죽음에 두려워 변장까지하고 나간 아합왕은 하나님께서 의지적으로 그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기를 결정하셨기에 무심코 활을 당겨 쏜 화살이 아합왕을 맞췄는데 그것도 갑옷을 맞혀서는 죽지않으니 갑옷의 압쪽과 뒷 쪽을 연결하기위해 이은 실, 그 사이 (아마도 어깨나 옆구리)에 맞아 죽게된 것이다.
무심코 당긴 화살을 하나님께서는 그 화살을 정확히 갑옷의 가장 약한 부분 생명을 위협할 부분에 가서 꽂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일을 인간이 어찌 바꿀 수 있겠는가?
인간은 이렇게 어리석은 것이다. 이미 정하신 하나님의 의지를 인간의 힘으로 바꾸고, 지혜로 모면하려는 가장 바보스러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합왕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일에서 돌이키는 것이 더 빠르고 확실한 방법임을 모르고 하나님의 뜻과 의지에 대항하려는 어리석은 우리가 아닌지 돌이켜 봐야할 것이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나님의 뜻과 무관한)이 아닌 선(하나님의 뜻과 일치한)을 행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행하는 삶을 살지 못하면서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의 지혜와 능력으로 바꾸어 보려는 노력을 하는데 결국 하나님은 의지대로 무심코 한 사람의 내 던진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연 같고, 무심코 일어난 일들 같지만 하나님의 깊이 개입하심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지는 않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유심히 들여다 보면 무심코가 결코 무심코가 아닌 우리의 삶에 깊이 관여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인 것을 우리는 느끼며 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과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삶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 우리의 삶에 깊히 개입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시는 일을 보게하시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하시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삶을 살게하여 주옵서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피드 구독하기:
글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