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2일 월요일

마르다는 베드로와 동일한 고백은 했으나 믿음없는 고백이었다.



11: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오라비 나사로가 죽은 뒤에 나타난 예수님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오라비가 죽지 않니하였겠나이다”(22)라며 불평스런 고백을 하는 마르다에게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않는다”(25,26) 하시면서 네가 이것을 믿느냐물으시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마르다가 고백을 하고 있다.

얼핏보면 믿음의 고백같아 보인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라고 고백한 것과 동일한 고백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르다의 고백은 베드로의 믿음의 고백과 달리 헬라어 원어를 자세하 관찰해보면 믿음없는 고백임을 알 수 있다.

한글 성경에는 “….내가 믿나이다라고 동사인 믿다가 현재형으로 되어있으나 원어에는 믿었었나이다(πεπίστευκα)인 현재완료형이다.
즉 이전까지는 그렇게 믿었었으나 오늘 내 오라비가 죽게 내버려둔 예수님을 보니 더이상 믿지못한다는 얘기인 것이다.

전후내용을 보면 그녀의 고백이 믿음없는 고백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오시자 예수님을 부를때, 주께서(21,22), 주여(27)라고 했으나, 이 고백을 하고 난뒤 동생 마르다를 부르러 가서는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하니”(28)라며 예수님을 선생님이라 부른다.
그렇다, 자기 오라비 나사로가 죽지않도록 아무것 하못한 예수님은 그녀에게 더 이상 주님이기보다는 친구이자 선생님이셨던 것이다.

, 마르다는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31) 마르다와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집에가서 더이상 그녀에게 주님이 아니며 능력없고 힘없는 예수님이 오셨음을 숨기려 가만히”(28) 마르다에게 전한다.
원어는 비밀리, 조용히(λάθρᾳ)라는 뜻으로 분명히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않았기에 마리아에게만 비밀스럽게 또 조용히 예수님이 오셨음을 얘기한다.
그래서 같이 있던 문상객들이 “….그가 급히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31) 곡하러 나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다는 결국 자신의 삶의 형통함과 평안이 있을때는 예수님이 주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로 믿어졌었으나 막상 오라비가 병으로 죽게되었는데 예수님께서 아무런 도움이 되어 주질 못하자 더이상 예수님은 그녀에게 주님이 아니었으며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런 믿음없는 고백을 했던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평안과 복을 누리고 만사가 형통할때에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아닌가?
예수님은 우리의 형편이나 닥친 상황의 형에 관계없이 주님이시요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눈물을 흘리시더라”(33,34) 친구인 나사로가 죽어 슬퍼하는 이들을 보고 동정심에 불쌍해서 눈물을 흘리신 것이 아니라 이들의 믿음 없음과 무엇을 믿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예수님이 진정 누구신지를 모르는 어리석음에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리셨던 것이다.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시라고 말씀하고 계신데도 그것을 모르고 믿지 않는 그들의 우매함에 심령에 비통해하셨던 것이다.

진정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산다면 우리 인생의 모든 영역과 모든 환경과 상황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을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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