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31일 일요일

눅 10장 38절-42절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앞으로 12월 첫주까지 성경공부가 없고 부서모임을 갖는다 하네요.
Qué pena, alguién se alegra? 난 조금 걱정이 되는데...

누가복음 10장39절-42절
39절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41절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절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해 청소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고, 정리도 하고, Mesa를 치우고
너무 준비할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해(정신없이 바쁨) 하고 있었다.
그때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아래 안자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듣고 있었다.

마르다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을 위한 일이지만 너무 많은 일로 바빠서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을 놓치고 있는 그녀에게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다고 하시며,
한 가지, 가장 중요한 한 가지, 가장 소중한 한 가지, 매일 오시지 않는 예수님이 어렵고 찾아
오신 그날에 가장 가치있고 중요한 일인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그 일 한가지를 택하였다고
하시면서 그것을 빼앗기지 안는다 하셨다.

교회도 어수선하고 2010년도를 마치고 2011년도 맞이하는 이 어지러운 이 시기에 과연
가장 중요한 것은 무것인가? 현재 청년부에서 하고 있는 모든 일이 예수님을 위한 것이지만
그렇게 바쁘고 정신없이 준비하고 있을때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한가지
현재 이 싯점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택하여 하라고 하시면 예수님을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닐까?

그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누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하다면 마르다가 아무리
예수님께 40절 마리아에게 도와주라 얘기해달라며 불평하더라도 마리아가 결코 빼앗기지 
않기위해 예수님의 발아래서 떠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말씀을 듣고 나누고 은혜받는 이
일 한가지, 가장 중요한 이 일을 붙들고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되지 않은지?

청년부를 위해 기도하며, 우리 청년부가 말씀을 사모하고, 우리 신앙생활에 예수님 닮아가는
이 삶에서 말씀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마리아처럼 행동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우리 조원들이라도 무엇이 중요한지,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붙들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쓰고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아들과 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따라 블로그(prosenor.blogspot.com)에 은혜 받은 말씀들을 올리니 같이 은혜받고 또
여러분들이 은혜받은 말씀들도 올려주기를 바래요.
11월 한달 이렇게라도 말씀을 나누고 같이 은혜받기를 원해요.
12월이 되면 간사들이 직접 여러분과 성경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어떤 방법이나, 모양이라도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듣고 나누는 여러분의 축복된 삶을
위하여 기도하며,

이재훈간사

2010년 10월 28일 목요일

눅22:51 이것까지 참으라

누가복음 22장에서부터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예비하시기 위해 마지막 제자들과의 유월절을 보내시고, 감람산에 습관대로 가셔서 땀 방울이 피 방울이되도록 기도하시고 난뒤 유다의 배반으로 결국 잡히시는 내용이 나온다.
예수님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극한 고통과 고난의 십자가를 피해가기를 원하셨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복종하고 이에 순순히 따르기로 하셨다.
하나님의 뜻  예수님의 인간적인 마음의 뜻과는 전혀 다른,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자신의 원함을 참고 내려놓겠다고 결정하셨다.

52절에, 감란산에 예수님을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 성전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에게 자신이 무슨 강도인 것처럼 강도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온 것 까지도 참으신 것이다. 만왕의 왕이요,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가장 악한 죄인으로써 전락하는 이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이기에 받아들이는 이 때에 예수님을 강도 취급하며 잡아가려는 이 방법까지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이런 방법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된 이일까지도 참고 받아드리시기를 원하신 것이다.

베드로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강도를 잡듯이 다가온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쳐 떨어트리자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며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이것까지 참으라"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을 받아들이고 용서를 하려하는데 그들의 방법이 너무 인간적이고 내 자신이 오히려 나쁜사람인 것 같이 대하고 사람들에게 떠들어데는 이 비열한 방법까지도 참고 받아드려야 함을 가르쳐 주시고 계신다.
이것까지,  가장 견디기 힘든, 진실이 가려지고 나를 강도로 죄인으로 몰아가는 이 악랄한 방법까지도 참아야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것까지도 참으셨기에 63절이후 부터 예수님을 희롱하고, 때리고, 욕하고, 채찍질하고, 침을 뱉어도 참을 수 있으셨던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기로 했기에 그의 뜻을 이뤄가는 방법에도 순종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뜻에 순종한다하면서 주님의 뜻을 이뤄가는 방법에는 불만이 많고 자신이 원하는 방법을 고집하는 말만 주님의 뜻을 외치며 그분의 방법을 인정하지 않는 위선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 주님의 뜻을 인정하고 순종한다면 그 분의 뜻을 이뤄가시는 방법도 인정하고 순종해야 할 것이다. 이것까지 참으라는 예수님이 먼저 실천해 보이신대로 우리도 따라 해야된느 것이다.

주님!, 주님이 몸소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과 그의 방법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그래서 이것까지 참을 수 있는 진정한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힘주시고 도와 주시옵소서.

2010년 10월 18일 월요일

눅19장1절-10절 삭개오가 보기를 원함

삭개오의 정체성, 그는 누구인가로 소개한다. 2절에 그는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피해의식, 열등의식 불만까지도 가지고 있던 차에, 그럼 예수님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원함. 3절에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과연 그의 정체성은 어떠한가, 어떤 사람인가 알고자하여 보러 나갔으나 키가 작아 자기 앞으로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다.

그냥 포기하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볼 수 있겠지라고 순간 생각을 했을지 모르나 다시 예수는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마음이 컸던지라 자신의 앞을 지나친 예수님을 다시 보기 위해 3절에 앞으로 달려가서 돌무화가 나무에 올가간다. 사람들을 제치고 예수님이 지나가실 앞쪽으로 달려가서(1), 나무위로 올라(2)갔다. 2개의 행동, 동사가 나오는데, 그의 적극성, 간절함이 표현되었다. 혹시나 또 지나칠까봐, 용기를 내어 달려가서, 체면에, 나이에 부끄러울 수 있었지만 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보기를 원했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을 그렇게 보기를 원할까? 살아계신 주님을 보기를 원하는지... 1절에서 6절까지 보다라는 동사가 4번이나 나온다,, 그만큼 보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과 사람의 눈을 의식한 삭개오의 정체성에 대한 피해의식을 잘 설명한다.
보는 것을 원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달려가서 올라가는 적극적인 신앙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토록 예수님을 보기를 원했던 삭개오, 그러나 정작 그자리를 지나가시던 주님이 먼저 쳐다 보시고(5절) 삭개오의 집에 유하겠다는 제의를 하심으로 초청을 하시고 계신다.

예수님을 단지 보기를 소원하고 그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를 보기를 원했던 삭개오에게 에수님은 보는 것으로써의 만남이 아닌 그를 영접케하시고 함께하심을 은헤를 주셨다.
6절에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주님의 초청에 즐거이 영접하는 삭개오, 그의 마음이 변했다. 사람의 시선에 가장 민감했고 자신이 그토록 중요시했던 재산을 주님을 영접한 뒤에는 나눠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무엇이 그를 변하게했는가?
예수님을 보고자 했던 간절한 마음. 그리고 그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옮김, 예수님의 초청을 받아드리고 영접함으로...

우리 하루 하루의 삶속에 주님을 보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 그리고 그러기 위해 행동하고 그를 내 삶에 현실속에 영접하고 들어오시고 같이 식사하시고 유하시도록 받아들여야 한다.

주님 오늘도 제 초라하고 볼품없는 제 삶에 현실에 찾아오셔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보기를 원합니다. 달려갑니다. 올라갑니다. 주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해주옵소서.

2010년 10월 5일 화요일

누가복음 15장 - 잃었던 것을 찾음

예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죄인을 비유하여 잃었던 것은 찾는다고 비유하심.
4절에 잃은 양을 찾다, 8절 잃은 드라크마을 찾다. 그러면서 7절과 10절에 이와 같이 죄인 한사람이 회개하면... 회개는 찾는 것이다, 다시 그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주님의 자녀로써의 칭의받은 의인으로써의 제자리를 찾는 것이 회개인 것이다. 잃어버린 신앙, 양심, 믿음, 진실 그자리에서 잘못을 깨닫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원래의 자리를 찾아 오는 것이 회개다. 비록 잠시 잃어버린 양처럼 드라크마처럼 죄를 짓고 원래의 자리에서 잃어버린바 된 현실에서 자시 제자리로 찾아가는 것이 회개인 것이다.
11절에 다시 탕자의 비유을 들으시면서 18절에 탕자가 자신을 잘못을 깨닫고 잃어버린 아들의 자리를 한탄하면서 그자리에 계속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원래의 자리로 찾아 돌아가는 것이 회개인 것이다. 자신은 아들로 받아들여지기를 기대도 않했으나 원래의 자리로 찾아 돌아가자 아버지의 아들로써의 자리를 회복시켜주는 것이다.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갈 수 없지만 현재의 자리를 떠나 원래의 자리를 찾아 갈때 하나님이 자녀로써의 본래 자리로 회복 시켜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인 것이다.

주님 이죄인 이죄의 자리에서 일어나 본래의 믿음의 자리를 찾아 갑니다. 죄의 고백과 진정한 회개를 하오니 받아주시고 제자리를 회복시켜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