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따라 살려는 모든 중앙 청년들에게.....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2011년 3월 26일 토요일
2011년 3월 18일 금요일
이사야 6:1-13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속에서 말씀하심
본문 내용은 이사야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는 내용으로 웃시야 왕이 죽던해 그의 경건의 시간, 기도의 시간에 하늘 보좌에 앉으시고 그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을 보게 되고, 거룩한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써의 부정됨을 깨닫게 된다, 천사를 통해 희생물이 받쳐지는 제단의 숯으로 그의 입술을 댐으로 정결케된다. 정결케된 이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되고 하나님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의 부르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 대답한다.
하나님을 볼수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가졌던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 나아감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
정결함을 받은 이사야는 유다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신을 보내달라 서원(자청)하며 결국 하나님께 선지자로써 쓰임을 받게된다.
우리인생에 주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뤄나가심에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없이,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이 없이는 이시대, 이곳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수가 없다.
매일의 삶속에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고 그 부르심에 순종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내삶을 향한 뜻과 부르심을 알고 순종하려면 또 구체적으로 매일의 삶속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하심을 깨닫고 순종하며 따라가려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절실함을 느낀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깊은 교제속에 하나님은 내게 말씀하시고, 그 말씀에 죄인됨을 고백하고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에 순종하겠노라고 대답을 해야한다.
주님 주님과의 깊은 교제속에 말씀하시어 주님의 마음과 뜻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부르심에 제가 여기 있나이다. 저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할 수 있게하옵소서. 깊은 교제를 원하시고 그 속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을 볼수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가졌던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 나아감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
정결함을 받은 이사야는 유다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신을 보내달라 서원(자청)하며 결국 하나님께 선지자로써 쓰임을 받게된다.
우리인생에 주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뤄나가심에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없이,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이 없이는 이시대, 이곳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수가 없다.
매일의 삶속에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고 그 부르심에 순종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내삶을 향한 뜻과 부르심을 알고 순종하려면 또 구체적으로 매일의 삶속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하심을 깨닫고 순종하며 따라가려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절실함을 느낀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깊은 교제속에 하나님은 내게 말씀하시고, 그 말씀에 죄인됨을 고백하고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에 순종하겠노라고 대답을 해야한다.
주님 주님과의 깊은 교제속에 말씀하시어 주님의 마음과 뜻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부르심에 제가 여기 있나이다. 저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할 수 있게하옵소서. 깊은 교제를 원하시고 그 속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1년 3월 10일 목요일
창 28:10-22 한 곳에 이르러는...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엄마 리브가의 말만 듣고 시키는대로 한 것 때문에 그렇게 행복하고 사랑받던 가족을 등지고 거기다 형 에서의 분을 사 하나 밖에 없던 형에 손에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정처없이 길을 떠나냐되는 비참한 현실을 맞게된 야곱.
목숨을 살리기 위해 집을 떠났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가운데 한 곳에 이르러 한 돌을 무심코 집어 베개삼아 잠을 청한 야곱. 그렇게 아무런 희망없이 잠이든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그에게, 야곱의 삶에 허락하신 것을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않겠다(15절)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그에게 그의 자손이 동서남북으로 지평을 넓혀가며 땅의 모든 족속이 그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14절)는 풍성한 가운데 베풀고 나눌 수 있는 복을 주시겠다 약속하셨다.
야곱은 여행길에 지쳐 아무런 생각없이 머물렀던 그 한 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다는 것을 깨달았다(16절) 자신은 혼자 외톨이가 되어 이름도 없는 그 한 곳에서 잠을 자게 되는구나 했던 그 자리에 하나님은 함께하셨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그 한 곳, 이 곳이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 문이라고 고백한다(17절). 또한 무심코 집어 베개삼은 그 한 돌을 가지고 기둥을 세우고 기름을 부으며 하나님의 집이라 칭하며 벧엘이라 명명한다.
야곱이 있는 자리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리라 생각되니 볼품없던 그 한 돌이 귀해지면서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이 계시는 집의 기둥으로 삼게된 것이다.
내 삶속에 내가 생각하는 무의미한 그 한 곳, 크게 가치를 두지 않는 그 한돌이 바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일때 내 삶속에 무의미했던 돌들이 하나님 집의 기둥으로 바뀌는 것이다. 아니 하나님의 집의 기둥으로 바꿔나가는 것이다.
청소년 시기에 아무런 희망없이 주님만을 바라보았던 그 삶속에, 그 볼품없고 초라한 그 무의미한 그 한 곳, 또 그 한 돌에 주님은 나와 함께하시며 내 삶속에 허락하신 일을 다 이루기까지는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시며 나를 통하여 내 안에 계신 주님의 풍성한 은헤를 세상 모든 이들에게 끼치게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주님,
내 자신을 바라보고 현실을 바라보면 절망스럽지만 내 하나님이 된신 주님을 바라보며 내가 있는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 문임을 고백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결코 제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집을 떠났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가운데 한 곳에 이르러 한 돌을 무심코 집어 베개삼아 잠을 청한 야곱. 그렇게 아무런 희망없이 잠이든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그에게, 야곱의 삶에 허락하신 것을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않겠다(15절)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그에게 그의 자손이 동서남북으로 지평을 넓혀가며 땅의 모든 족속이 그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14절)는 풍성한 가운데 베풀고 나눌 수 있는 복을 주시겠다 약속하셨다.
야곱은 여행길에 지쳐 아무런 생각없이 머물렀던 그 한 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다는 것을 깨달았다(16절) 자신은 혼자 외톨이가 되어 이름도 없는 그 한 곳에서 잠을 자게 되는구나 했던 그 자리에 하나님은 함께하셨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그 한 곳, 이 곳이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 문이라고 고백한다(17절). 또한 무심코 집어 베개삼은 그 한 돌을 가지고 기둥을 세우고 기름을 부으며 하나님의 집이라 칭하며 벧엘이라 명명한다.
야곱이 있는 자리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리라 생각되니 볼품없던 그 한 돌이 귀해지면서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이 계시는 집의 기둥으로 삼게된 것이다.
내 삶속에 내가 생각하는 무의미한 그 한 곳, 크게 가치를 두지 않는 그 한돌이 바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일때 내 삶속에 무의미했던 돌들이 하나님 집의 기둥으로 바뀌는 것이다. 아니 하나님의 집의 기둥으로 바꿔나가는 것이다.
청소년 시기에 아무런 희망없이 주님만을 바라보았던 그 삶속에, 그 볼품없고 초라한 그 무의미한 그 한 곳, 또 그 한 돌에 주님은 나와 함께하시며 내 삶속에 허락하신 일을 다 이루기까지는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시며 나를 통하여 내 안에 계신 주님의 풍성한 은헤를 세상 모든 이들에게 끼치게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주님,
내 자신을 바라보고 현실을 바라보면 절망스럽지만 내 하나님이 된신 주님을 바라보며 내가 있는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 문임을 고백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결코 제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2011년 3월 4일 금요일
행 15:36-40 바울이 결코 같이 데리고 갈 수 없었던 마가
36절: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절: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절: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절: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바울이 1차 전도여행때 마가의 행동으로 몹시 화가 나있었다. 마가가 일행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일이 바울에게는 전도사역에 도움이 되지않는, 같은 비전을 품지못할 배신자 같은 사람으로 여겼다. 그랬기에 바나바와 심히 다투기까지 하며 끝끝내 2차 전도여행에 마가대신 실라를 데리고 갔다.
그렇게 마음에 안들고 미웠던 마가를 바울은 결국 그를 사랑하는 동역자로 가장 보고싶은 믿음의 형제로 그를 찾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예수때문에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된다.
빌레몬서 1:24에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라고 하면서 그를 사역의 동역자라고 소개를 하고 있으며, 디모데 후서 4:11에 "....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라며 보고싶다며 또 바울 자신에게 유익이 된다며 디모데에거 올때 같이 와달라 부탁을 하고 있으며, 골로새서 4:10에 "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바울과 같이 감옥에 까지 함께 갇히게 되는, 함께 고통을 나누는 동역자로 그를 소개하고 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한번 눈 밖에 난 사람을 받아들 일 수 없는 것이 정상일지도 모르나 그러나,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는 예수를 위해, 예수 때문에 또 복음을 위해 마가를 받아들이고 동역자로 보고싶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함께 감옥에까지 갇히는 자리에 가는 것이다.
주님,
아직 우리 마음속에는 같은 믿음, 같은 복음을 가졌어도 함께 나누지 못하며 서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못하는 믿음의 형제가 있습니다. 저희의 완악함을 용서하여 주시고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으로 사랑으로 그들을 같음 믿음의 형제요 사랑하고 보고싶은 형제로 또 복음을 위해 같이 고난받을 수 있는 형제로 받아 들일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39절: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절: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바울이 1차 전도여행때 마가의 행동으로 몹시 화가 나있었다. 마가가 일행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일이 바울에게는 전도사역에 도움이 되지않는, 같은 비전을 품지못할 배신자 같은 사람으로 여겼다. 그랬기에 바나바와 심히 다투기까지 하며 끝끝내 2차 전도여행에 마가대신 실라를 데리고 갔다.
그렇게 마음에 안들고 미웠던 마가를 바울은 결국 그를 사랑하는 동역자로 가장 보고싶은 믿음의 형제로 그를 찾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예수때문에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된다.
빌레몬서 1:24에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라고 하면서 그를 사역의 동역자라고 소개를 하고 있으며, 디모데 후서 4:11에 "....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라며 보고싶다며 또 바울 자신에게 유익이 된다며 디모데에거 올때 같이 와달라 부탁을 하고 있으며, 골로새서 4:10에 "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바울과 같이 감옥에 까지 함께 갇히게 되는, 함께 고통을 나누는 동역자로 그를 소개하고 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한번 눈 밖에 난 사람을 받아들 일 수 없는 것이 정상일지도 모르나 그러나,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는 예수를 위해, 예수 때문에 또 복음을 위해 마가를 받아들이고 동역자로 보고싶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함께 감옥에까지 갇히는 자리에 가는 것이다.
주님,
아직 우리 마음속에는 같은 믿음, 같은 복음을 가졌어도 함께 나누지 못하며 서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못하는 믿음의 형제가 있습니다. 저희의 완악함을 용서하여 주시고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으로 사랑으로 그들을 같음 믿음의 형제요 사랑하고 보고싶은 형제로 또 복음을 위해 같이 고난받을 수 있는 형제로 받아 들일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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