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이었다가 눈을 뜬 바디메오 우리에게 잘알려진 이름이다.
바디메오가 눈을 뜰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믿음때문(52절)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런 그의 믿음이 어떠했기에 그의 믿음때문에 눈을 뜰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본다.
앞을 못보는 맹인이었던 바디메오 그러나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던 것은 거지였다는 사실, 하루 하루를 살기위해 그는 동냥을 해야만 했다. 남에게 동전을 구걸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야만 했던 초라한 그사람, 앞이 보이지 않은 것도 인생을 탓하면서 살아도 부족한데 거기다 거지의 신세 그의 최대의 관심사는 오늘은 얼마나 많은 동정을 받는가 였다. 조용히 머리를 푹 숙이고 말도 없이 앉아 있으면 지나가던 사람이 동전을 던저주고 아무도 동전을 던저 주는 사람이 없으면 손에 가지고 있는 동전으로 소리를 내어 동전을 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렇게 길거리에 앉아 사람들의 움직임과 지나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누군가 동전을 던저주지는 않은지 긴 하루를 보내고 있을때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얘기를 듣게된다. 사람들은 한 시골 나사렛 출신 예수에 대해서 얘기할때 그는 메시야로 오신 다윗의 자손 예수로 듣고 있었다. 자신을 구할 메시야 예수라는 생각에 이제까지 목매이고 최대의 관심사 동전 몇푼을 땅에 버려두고 지금까지 큰 소리로 한번도 질러보지 못한 목소리로 목이 터저라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그러자 사람들이 이 맹인 거지가 미쳤나 하며 조용히 하라고 저지하자 사람들의 만류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크게 소리지르며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부르짓음은 곧 "메시야 예수시여 나를 구원하소서"였다. 자신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달라는 울부짖음이었으며, 자신의 초라하고 비참한 삶을 구해달라는 간구였던 것이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의 보기를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시고 그는 그가 메시야 예수가 자기를 구원하리라는 믿음으로 이 세상을 보게되었다. 누가복음 18장 43절에는 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무엇이 그의 믿음이었는가?
첫때는 예수님에 대해 올바로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라고 외칠때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로 알고 있었다. 자신같이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섬기고 구원해 주시기에 오신 메시야임을 그는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가? 예수님에 대해 정확히 알때 비로써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내 삶속에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는가? 내 머리카락까지도 세고 계시는 나를 너무 나도 잘 아시는 주님으로 알고 있는가? 나와 깊은 교제를 갖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는가 말이다.
그의 믿음은 둘째로 자신의 가치를 내려놓는 믿음과 외치는 믿음이었다. 그가 자신을 감추기위해 소리도 내지않고 머리를 숙이고 손을 흔들던 그가 또한 동전 하나에 목을 빼고 사람들의 움직임에 모든 관심이 쏠려 동전 깡통을 움켜쥐고 있던 그는 과감하게 가장 소중한 그 가치 동전깡통을 내던지고 목소리를 내어 아니 목이 터저라고 예수님을 불렀다.
우리는 우리의 이미지관리를 위해 예수님 보다는 남의 평가, 눈치 또 내가 아끼고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것 때문에 예수님의 지나가심을 듣고도 그것을 내려두지 못하고 예수님을 불러보지도 못하지는 않은지... 과감하게 절대 놓칠 수 없는 동전 깡통을 내던지고 목이 터저라고 예수님을 불러야 한다. 예수님!, 나의 구세주 예수님, 나의 주님되신 예수님 내삶의 오셔서 나를 고쳐주시고 인도하여 달라고 외쳐야한다. 나에게 주신 이 고통과 어려움의 깊은 뜻을 깨닫고 주의 뜻에 순종하고 이 낙심되고 지쳐있는 삶에서 나를 구해달라고 큰 소리로 외쳐야 한다.
바로 이 믿음때문에 이 간절함때문에 예수님은 그의 간구를 들어주신 것이다.
우리도 먼저 바로 예수님을 알아야 한다. 나를 향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야한다. 그리고 꼭 붙들고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불러야 한다.
"예수님!, 내 주님 되신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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