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인가?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다, 예수님을 따른다, 예수님을 믿는다, 또 예수님을 위해 살고 예수님을 위해 죽는다고까지 한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가?
누가복음 9장 23절에 보면,
주님은 나를 따라 오려거든이란, 다른 말로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이라고 전제하시며 조건을 말씀하신다.
1)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이 먼저 본을 보이셨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위해 십자가에 달리실 그 시간 만큼은 자신을 부인하셨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 자신임을 철저하게 내려놓으시고 십자가의 죄없는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드리셨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
- 이재훈이는 더이상 없다 내 삶에 오직 주님뿐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어떻게 내 삶에 내가 있을 수 있는가? 예수님의 삶을 살아드리는 것이고 예수님의 뜻과 목적만이 내 삶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이재훈이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벌래만도 못한 인간인 것이다. 우리가 뭔가 가졌다고? 권한, 권력, 지위가 있다고? 우리는 아무런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쓸모없는 존재이며, 오직 주님에 의해, 주님을 위해 존재 한다고 믿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 이재훈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주님이 모든 일을 하셨다 라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며, 내가 뭘 잘했다고, 내가 뭘 잘한다고, 나를 내세울 수 있는가? 우리가 교회를 위해 무었을 했다고,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했다고, 우리를 나타낼 수 있는가? 아무리 교회를 위해 예수님을 위해 큰 일을 했다할 지라도 당연한 것이고 예수님의 은혜로 감사로 한 것뿐이며, 우리는 아무것이 아닌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가? 우리 자신은 온데간데 없고 우리의 생각과, 얼굴과 말과 행동과 그리고 마음과 더 깊은 우리의 중심에 우리 자신이 없는가 말이다.
우리 자신을 부인한다면 우리 마음대로 생각할 수 없고, 우리 마음대로 말할 수 없으며, 우리 마음대로 얼굴을 붉힐 수 도 없으며, 우리 마음대로 행동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정말 우리의 생각을 통해, 우리의 입을 통해, 우리의 얼굴과 행동을 통해 또 우리의 마음을 통해 예수님이 나타나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우리를 부인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가 현재 보여주고 있는 것이 우리를 부인하는 말과 행동인지 자신에게 물어봐야할 것이다.
만약 자신을 부인하는 삶이 아니라며 우리는 감히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가? 그럼, 우리는 당연히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를 없어지고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얼굴, 생각, 입술, 행동, 마음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또 두번째의 조건으로,
2)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 십자가를 져야지만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있다면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있는가?
또, 왜 그냥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 하시지 않고 "날마다"라는 형용사를 붙이셨을까?
십자가를 지는 것보다 더중요한 것은 어떻게? 십자가를 지는가 이다.
날마다라고 하신 이유는,
- 십자가를 지는 유효기간이 단 하루이기때문이다. 오늘 내 십자가를 지었다고 일주일 쉬고 십자가를 않져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오늘 진 우리의 십자가의 효력은 오늘로써 끝이 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
- 반복되어져야 하기에 날마다 져야한다. 이미 진 십자가 또 질 필요가 있겠는가? 이미 몇번이고 진 십자가인데 하며 십자가를 지지 않을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하여 예수님이 오실때까지 반복에 반복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러기위해서 우리는 날다마 자기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
- 습관이 되야 하기에, (반복학습은 습관을 만든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며, 우리의 삶의 일부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는 것 같이 우리는 우리의 십자가를 날마다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져야하는 것이다.
30년 십자가를 졌는데 하며 더 이상 십자가를 질 수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오실때까지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만 하는 것이다.
십자가를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을 죽을때까지 따라간다면 우리는 죽을때까지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럼 각자가 지어야할 자기 십자가는 무엇인가?
- 좋던 싫던 내가 지어야할 십자가이다, 현 상황, 현재 원하던 원하지않던 감당해야할 십자가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잔을 지나가게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실때 예수님은 그 상황에서 그 것을 원치 않으셨다. 아니 정말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좋던 싫던 지셔야했던 십자가였으며, 그 십자가를 지셨다.
- 내가 태어나고, 살아야 할 목적을 주는 십자가이다./ 예수님의 태어나신 목적, 영혼구원의 목적을 이루게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즉 십자가를 지시기위해 태어나시고 살으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를 위해 태어났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 하나님이 내 삶에 주신 뜻을 이루기위한 필수적인 고통의 십자가./ 인류를 사랑하시어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위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의 주님의 외침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위해 감당해야한 고통의 십자가처럼, 우리가 이땅에 보내심을 받고 살아가는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위해 감당해야할 고통과 어려움이 십자가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예수님을 따라가며 살고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는가?
주님, 주님을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부인해야하며 날마다 내 십자가를 져야함을 압니다.
그래도 따라가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갈 힘을 주옵시고, 주님의 강한 팔로 쓰러지지 않고 포기하지않도록 붙들어 주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모범이 되시고 짊어지신 십자가로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