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명보다 그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에 모든 촛점과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분명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은 중요하고 반듯이 지켜야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명에만 집중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사소하게 명령하신 것에 소홀할 수가 있다.
하나님은 사실 사명보다 더 관심이 있는 것은 그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곤한다.
열왕기산13장에 보면 한 하나님의 사람이 나온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세우셔서 그에게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의 왕에게 가서 심판을 경고하고 그가 세운 산당과 우상들을 심판하시리라는 말씀을 전하라는 큰 사명을 받았다.
유다에서부터 벧엘에까지 가서 마침 제단에 서서 분향하는 여로보암을 향해 하나님께서 그의 입에 주신 경고와 징계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한다.
열상13장 2절 "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아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다가 붙잡혀 줄을 수도 있었지만 목숨도 감수하고 하나님의 사명을 잘 이행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중대한 사명을 주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지친 몸을 다시 이끌고 절대 떡이나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도 되돌아가지 말고 떠나라고 명령하셨다.
열상13장8절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 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9절에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 하셨음이니이다하고"
여로보암왕은 하나님의 징계의 말씀에 두려워 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거둬달라 기도를 부탁을 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 하나님의 사람을 붙들고 집에 가서 쉬라하며 예물을 받아주기를 청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정말 여로보암의 유혹을 잘 물리치고 넘겼다.
아니 그 상황을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는지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잘 감당했으니 힘들고 지치고 두려웠던 그 상황을 빨리 모면 하고 싶었을 수 도 있다.
그렇게 그는 빠른 걸음으로 그 곳을 빠져 나왔지만 지쳐있던 그 하나님의 사람이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을때 문제가 터지고 만다.
열상13장14절 " 하나님의 사람을 뒤따라가서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은 것을 보고 이르되 그대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냐 대답하되 그러하다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으라"
11절에 보면 " 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더니..." 바로 이 늙은 선지자가 이 하나님의 사람을 유혹한 것이다. 왜 늙은 선지자였는가, 늙었다는 말은 나이가 늙었기 때문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지 오래되었다는 뜻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과으 교제, 교통이 없어 나이만 먹어 늙었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왜냐면 그는 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거짓으로 자기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 하나님의 사람을 집으로 데려가라고 했다고 말하고 있다. 열상 13장18절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시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 하니 이는 그 사람을 속임이라"
안그래도 지쳐있고 굶주린 그에게 이 늙은 선지자의 말은 정말 호의적인 말이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렸다. 사소해 보였지만 하나님이 거기에 남아서 떡을 먹지도 물을 마시지도 말라고 분명히 명령하셨는데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소홀히 여기게 되고 아니 굶주림과 지친몸때문에 기억 조차도 못하고 있었는지도...
여기서 두가지의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은, 첫째 이 늙은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선지자라도 하나님과 일상에서의 깊은 교제가 지속되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 남을 실족시키며 죄를 짓게하는 처지에 갈 수 밖에 없다는 거이며, 둘째로는 이 하나님의 사람처럼 하나님은 자신이 주시는 사명도 중요하지만 그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사명자는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명은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께서 이루시지만 그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은 어떻게 또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순종하는지는 그 사람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사람이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않았으면 또 다른 사람을 보내셨을 것이고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경고와 징계의 말씀을 분명히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려고 그 하나님의 사람을 택하시고 세우실때는 그 사람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하는지를 보시려는 것이다.
왜냐면 하나님은 사명보다 그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기때문인 것이다.
그것을 몰랐던 이 하나님의 사람은 결국 늙은 선지자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치 못하게 되고 결국 그는 돌아가는 길에 사자에게 물어 뜯게 죽게되는 비참한 결과를 맞게된다.
열상13장 24절 " 이에 그 사람이 가더니 사자가 길에서 그를 만나 물어 죽이매 그의 시체가 길에 버린바 되니 나귀는 그 곁에 서 있고 사자도 그 시체곁에 서 있더라"
우리는 하나님께 사명을 달라고 구한다. 또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정작 그 사명에 앞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하는 마음과 믿음이 없다면 그 사명을 잘 감당한들 하나님께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명감당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주님, 사명감당하기에 두렵고 떨립니다. 분명 사명을 잘 감당해야합니다. 그러나 사명 감당에 앞서 이 사명을 주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세우시지만 이 사명보다는 우리에게 더 관심이 있음을 잊지않게 하옵소서. 사명보다는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을 따라 살려는 모든 중앙 청년들에게.....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2011년 11월 21일 월요일
2011년 11월 14일 월요일
하나님의 성전은 왜 기도하는 집이며, 기도하는 집의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에 이 땅에서 사역을 하시면서 크게 화를 내신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성전에서 환전하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채찍으로 그들을 쫓으시고 상을 뒤 엎으신 일이었다.
그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마21:13라 하시면서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이사야 56장7절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예수님은 성전을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을 하셨는데, 하나님의 성전은 왜 기도하는 집인가? 또 기도하는 집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을 알기위해서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했던 솔로몬의 시대로 다시 내려가봐야 할 것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나서 그는 문명히 알고 있었다. 스스로 계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자기가 만든 성전에 계시지않는 다는 것을 또 그가 아름답고 멋지게 만들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성전에 거하시라고 건축하지는 않았음을 열상8장 27절에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라며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돌로 건축한 성전에 거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럼 솔로몬은 왜 성전을 건축했는가?
28절에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라고 하며 그가 이 성전에서 기도와 간구로 고할때 들어달라고 구하고 있다.
또 29절(주의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30절(주의 종과 주의 백성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때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34절(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기도하며 간구하거든 들으시고) , 36절(이 곳을 향하여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들의 죄에서 떠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38절(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이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들으시고), 39절(...들으시고), 43절(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기도하거든....들으시고), 45절(기도하거든...들으시고), 49절(기도하거든...들으시고), 52절(주께 부르짖는 대로 들으시고),
무려 10번이나 반복 또 반복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솔로몬왕과 이스라엘백성이 각각 또는 온 백성 전체가 어떤 이유에서나 간구하고 기도하면 들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솔로몬은 바로 성전을 기도하는 집으로 하나님께 어떤 기도제목을 가지고 와서 간구하고 기도하면 들어주십사 또 들어주시리라는 기도의 집이 되기를 바라고 성전을 건축한 것이다.
하늘들의 하늘도 감당치 못하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건축한 성전에는 거하시지 못하지만 그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기도하고 간구하면 찾아오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시기를 바라며, 기도의 집이요 하나님께 들으신바되는 기도가 되고 응답이 되는 기도의 집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열상9장3절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라고 하시며 이 성전에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 합당한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며 그 곳에 와서 경배하고 각각의 사정을 안고 간구하고 기도하는 백성에게 눈길을 주시며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영원히 두시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솔로몬의 그 기도를 들으시고 성전을 주를 찾는 모든이들의 기도의 집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두시고, 그의 눈길과 마음을 영원히 두시겠다 약속을 하시는 것이다.
그럼, 기도의 집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이사야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사야56장6절-7절에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라고 말씀하신다.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이라 하시면서, 먼저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긴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다. 그러나 기도하는 집은 단순히 우리의 간구와 기도제목을 아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다.
분명 하나님께 번제와 희생을 드려야 한다, 경배와 찬양이 있어야 하고 그에 대한 하나님은 답변으로는 그 하나님의 성전 기도하는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실 것이라 말씀하신다. 즉 그들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신다는 것이다.
연합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은 영광과 찬양 받으시길 합당한 하나님께 경배와 영광을 드리고 그들의 기도제목을 드릴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교제 바로 연합이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하면서 또는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과의 연합이 없다면 즉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하나님께 얘기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들으시고 말씀하시고 응답하시는 대화하고 교제하는 깊은 연합이 없다면 우리는 기도하는 집, 하나님의 성전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바로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면서 살아 역사하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기위해 연합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였던 것이다. 백성들의 슬픔과 어려움을 아뢰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눈길과 마음을 움직여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 하나님과 대화하며 교제하고 연합할 수 있는 그런 성전을 건축한 것이다.
주님, 주의 성전에서 주님과 연합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저희의 모든 기도를 드리며 그에 대해 응답하시고 말씀하시는 주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과 대화하고 깊은 교제를 하는 연합이 있게하여 주옵소서. 또한 우리 몸이 주의 성전인 것처럼, 우리의 영과 몸이 주님과 연합하여 주님과 깊은 교제속에서 살아가게 하여주옵소서. 몸소 행하여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마21:13라 하시면서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이사야 56장7절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예수님은 성전을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을 하셨는데, 하나님의 성전은 왜 기도하는 집인가? 또 기도하는 집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을 알기위해서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했던 솔로몬의 시대로 다시 내려가봐야 할 것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나서 그는 문명히 알고 있었다. 스스로 계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자기가 만든 성전에 계시지않는 다는 것을 또 그가 아름답고 멋지게 만들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성전에 거하시라고 건축하지는 않았음을 열상8장 27절에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라며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돌로 건축한 성전에 거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럼 솔로몬은 왜 성전을 건축했는가?
28절에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라고 하며 그가 이 성전에서 기도와 간구로 고할때 들어달라고 구하고 있다.
또 29절(주의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30절(주의 종과 주의 백성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때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34절(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기도하며 간구하거든 들으시고) , 36절(이 곳을 향하여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들의 죄에서 떠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38절(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이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들으시고), 39절(...들으시고), 43절(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기도하거든....들으시고), 45절(기도하거든...들으시고), 49절(기도하거든...들으시고), 52절(주께 부르짖는 대로 들으시고),
무려 10번이나 반복 또 반복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솔로몬왕과 이스라엘백성이 각각 또는 온 백성 전체가 어떤 이유에서나 간구하고 기도하면 들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솔로몬은 바로 성전을 기도하는 집으로 하나님께 어떤 기도제목을 가지고 와서 간구하고 기도하면 들어주십사 또 들어주시리라는 기도의 집이 되기를 바라고 성전을 건축한 것이다.
하늘들의 하늘도 감당치 못하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건축한 성전에는 거하시지 못하지만 그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기도하고 간구하면 찾아오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시기를 바라며, 기도의 집이요 하나님께 들으신바되는 기도가 되고 응답이 되는 기도의 집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열상9장3절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라고 하시며 이 성전에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 합당한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며 그 곳에 와서 경배하고 각각의 사정을 안고 간구하고 기도하는 백성에게 눈길을 주시며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영원히 두시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솔로몬의 그 기도를 들으시고 성전을 주를 찾는 모든이들의 기도의 집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두시고, 그의 눈길과 마음을 영원히 두시겠다 약속을 하시는 것이다.
그럼, 기도의 집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이사야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사야56장6절-7절에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라고 말씀하신다.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이라 하시면서, 먼저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긴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다. 그러나 기도하는 집은 단순히 우리의 간구와 기도제목을 아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다.
분명 하나님께 번제와 희생을 드려야 한다, 경배와 찬양이 있어야 하고 그에 대한 하나님은 답변으로는 그 하나님의 성전 기도하는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실 것이라 말씀하신다. 즉 그들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신다는 것이다.
연합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은 영광과 찬양 받으시길 합당한 하나님께 경배와 영광을 드리고 그들의 기도제목을 드릴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교제 바로 연합이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하면서 또는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과의 연합이 없다면 즉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하나님께 얘기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들으시고 말씀하시고 응답하시는 대화하고 교제하는 깊은 연합이 없다면 우리는 기도하는 집, 하나님의 성전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바로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면서 살아 역사하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기위해 연합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였던 것이다. 백성들의 슬픔과 어려움을 아뢰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눈길과 마음을 움직여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 하나님과 대화하며 교제하고 연합할 수 있는 그런 성전을 건축한 것이다.
주님, 주의 성전에서 주님과 연합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저희의 모든 기도를 드리며 그에 대해 응답하시고 말씀하시는 주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과 대화하고 깊은 교제를 하는 연합이 있게하여 주옵소서. 또한 우리 몸이 주의 성전인 것처럼, 우리의 영과 몸이 주님과 연합하여 주님과 깊은 교제속에서 살아가게 하여주옵소서. 몸소 행하여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1년 11월 10일 목요일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이 직접 건축을 하신다.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이 직접 건축을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하셨는가?, 또 하나님은 어떤 기준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하시는가?
열상8장16절에 보면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다만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하나님의 성전은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위해 좋은 장소를 찾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한국에 명당이라는 말이 있는데, 풍수지리상 가장 좋은 자리가 아니라, 또 장사꾼들이 좋아하는 몫이 좋은 자리가 아니며, 안전하고 교통이 좋은 자리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위해 장소를 개의치 않으신다는 말씀인 것이다.
하나님은 장소보다도 사람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좋은 장소보다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적합한 사람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또 장소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왕이 중요한데 다윗왕의 마음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왜냐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왕도 성전을 건축하지 못했기때문이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려야한다. 다윗왕과 같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한 하나님의 사람이 그 백성들을 준비시켜야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그 백성들을 가르치고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다윗왕은 무엇을 어떻게 다스렸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지를 가르치고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인지를 가르치고 그 백성들의 마음을 다스렸던 것이다. 그 백성들의 마음을 준비시켰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이 올바로 하나님을 섬기기 하기위하여 먼저 그 백성들의 마음을 다스리고 준비를 시키게끔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땀과 노력으로 지어진 멋지고 아름다운 성전을 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전은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과 헌신으로 하나님을 섦기기위해 준비된 다음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올바르고 거룩한 제사를 드릴 수 있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좋은 장소를 찾는데 모든 관심과 열심을 집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과 올바른 믿음을 먼저 가지는데 우선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과 삶을 먼저 준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또 삶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는다면 그 아무리 아름답고 멋진 성전인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그 어느 성읍도 택하지 않으셨으며 먼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스릴 다윗왕을 택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왕도 결국 성전을 건축하지 못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준비시키고 성전 건축을 위한 재료를 준비했지만 결국 하나님은 그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성전 다윗왕의 아들 솔로몬왕이 건축을 하게된다.
열상8장 17절-19절 "내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그러나 너는 그 성전을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출하리라 하시더니"라고 말씀을 하시고 계신다.
성전은 다윗왕이 가졌던 간절한 마음으로도 건축할 수 없는 것이다. 다윗왕이 그 아무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더라도 하나님이 정하시고 원하시는 사람이 아니고는 건축할 수 없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의 뜻대로 건축한다는 말이다.
백성들의 마음을 준비시키시고 성전건축을 위해 모든 재료를 준비를 시키신후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원하시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방법으로 건축을 하신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위해 할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왜냐면 하나님은 자신의 성전을 자신의 뜻대로 건축하시기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헌신과 노력뒤에 사람들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했다고 하는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중 아무도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수없다. 오로지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이 건축하시는 것이다.
주님! 자신의 몸을 비유하신 성전도 주님께서 직접 세우셨듯이 또, 영적으로 성전인 곧 주님을 믿고 섬기는 저희들도 하나님께서 직접 건축하시고 세우시듯이 하나님의 성전, 예배처소도 하나님께서 직접 건축하시고 세우시는 줄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관여하시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친히 건축하고 세워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1년 11월 9일 수요일
솔로몬왕이 의지했던 오른팔과 왼팔은?
우리는 가장 믿을만하고 또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일을 처리하는 유능하고 똑똑한 오른팔과 왼팔을 가지고 싶어한다. 그들을 믿고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모든 것이 가하고 능하다고까지 생각을 한다.
한 기업체에서도 사장의 오른팔과 왼팔이 사장의 특별한 신임을 받으며 모든 회사의 일에 관여하고 도맡아 처리한다. 그만큼 사장이나 회장은 그의 오른팔과 왼팔을 신뢰하고 그들을 믿고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오른편엔 변호사, 왼편에 회계사라고 까지 하며 자신을 받쳐주고 세워주고 능력을 주는 사람은 바로 그의 오른팔과 왼팔이라고 믿고있는 것이다.
검은 양복의 조직(?) 아저씨들도 두목이 있고 그의 옆에는 항상 오른팔과 왼팔이 지켜서서 두목에게 믿음을 주고 그 두목을 보호하고 지키는 가장 중요한 일을 그들만이 한다. 두목이나 그 조직의 영향력과 세력을 확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활을 바로 오른팔과 왼팔이 하며, 두목을 세워주고 그에게 능력을 더해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솔로몬왕도 당시 오른팔과 왼팔이 그에게 있었다. 그가 가장 신뢰하고 믿고 따르던 그의 오른팔과 왼팔, 그가 지혜롭고 모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며 장본인이 바로 그의 오른팔과 왼팔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솔로몬왕의 오른팔과 왼팔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놋 기둥이었다는 것이다.
열상7장21절에 보면 "이 두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하고 왼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하였으며,"라고 기록하고 있다.
솔로몬왕이 옆에 두고 모든 일에 의지하고 신뢰하며 세웠던 그의 오른팔과 왼팔은 놋으로 만든 두 기둥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궁에서 아침 저녁으로 볼수 있고 또 언제 어디서나 볼수 있도록 성전 앞에 오른편과 왼편에 높이 10M에 가까운 아주 높은 기둥을 세우고 오른편 기둥의 이름을 야긴 즉 "저가 세우리라"라고 명명하고, 또 왼편 기둥의 이름을 보아스 즉 "그에게 능력이 있다"라고 명명하고 그가 오직 의지하고 그의 삶을 맡기고 따라갈 수 있는 유일한 신뢰자인 오른팔과 왼팔을 야긴과 보아스로 세운 것이다.
유능하고 지혜로우며 최고인 믿을 만한 사람을 세운 것이아니라, 오직 그가 왕이되고 아버지 다윗의 왕위를 이어가게하시는 분은 하나님임을 알고, 그를 세우시고 그를 왕으로 삼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야긴,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오른팔 기둥을 세우고, 그가 지혜롭고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시는 분도 오직 하나님이며 이 모든 것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보아스, "하나님께 능력이 있음을, 모든 것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라는 왼팔의 기둥을 세운 것이다.
인간적인 오른팔과 왼팔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다는 의지로 성전앞에 오른편과 왼편의 기둥을 세웠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오른팔과 왼팔을 자랑하며, 그들이 우리를 살리고 세우는 줄 알고 지내오지는 않았는지?
아직도 우리의 오른팔과 왼팔을 의지한체 우리가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이루겠다고 하고 있지는 않는지?
솔로몬왕이 전무후문한 모든 부귀영화와 세상의 모든 지혜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믿고 의지했던 오른팔과 왼팔은 바로 하나님이었으며, 하나님의 대한 신앙으로 두 기둥을 세우고, 아침, 저녁으로 언제 어디서나 그를 세우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잊지않기위해 바로 그 놋 기둥을 세운 것이다.
주님!, 우리가 믿고 의지했던 오른팔과 왼팔 모두 내려놓게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세우시고 우리에게 능력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음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도 우리 마음에 오른편에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기둥과, 왼편에 하나님께 능력이 있다는 기둥을 세워 우리의 날마다의 고백이 되게하여주옵소서.
모든 능력과 힘의 원천이 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 기업체에서도 사장의 오른팔과 왼팔이 사장의 특별한 신임을 받으며 모든 회사의 일에 관여하고 도맡아 처리한다. 그만큼 사장이나 회장은 그의 오른팔과 왼팔을 신뢰하고 그들을 믿고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오른편엔 변호사, 왼편에 회계사라고 까지 하며 자신을 받쳐주고 세워주고 능력을 주는 사람은 바로 그의 오른팔과 왼팔이라고 믿고있는 것이다.
검은 양복의 조직(?) 아저씨들도 두목이 있고 그의 옆에는 항상 오른팔과 왼팔이 지켜서서 두목에게 믿음을 주고 그 두목을 보호하고 지키는 가장 중요한 일을 그들만이 한다. 두목이나 그 조직의 영향력과 세력을 확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활을 바로 오른팔과 왼팔이 하며, 두목을 세워주고 그에게 능력을 더해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솔로몬왕도 당시 오른팔과 왼팔이 그에게 있었다. 그가 가장 신뢰하고 믿고 따르던 그의 오른팔과 왼팔, 그가 지혜롭고 모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며 장본인이 바로 그의 오른팔과 왼팔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솔로몬왕의 오른팔과 왼팔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놋 기둥이었다는 것이다.
열상7장21절에 보면 "이 두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하고 왼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하였으며,"라고 기록하고 있다.
솔로몬왕이 옆에 두고 모든 일에 의지하고 신뢰하며 세웠던 그의 오른팔과 왼팔은 놋으로 만든 두 기둥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궁에서 아침 저녁으로 볼수 있고 또 언제 어디서나 볼수 있도록 성전 앞에 오른편과 왼편에 높이 10M에 가까운 아주 높은 기둥을 세우고 오른편 기둥의 이름을 야긴 즉 "저가 세우리라"라고 명명하고, 또 왼편 기둥의 이름을 보아스 즉 "그에게 능력이 있다"라고 명명하고 그가 오직 의지하고 그의 삶을 맡기고 따라갈 수 있는 유일한 신뢰자인 오른팔과 왼팔을 야긴과 보아스로 세운 것이다.
유능하고 지혜로우며 최고인 믿을 만한 사람을 세운 것이아니라, 오직 그가 왕이되고 아버지 다윗의 왕위를 이어가게하시는 분은 하나님임을 알고, 그를 세우시고 그를 왕으로 삼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야긴,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오른팔 기둥을 세우고, 그가 지혜롭고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시는 분도 오직 하나님이며 이 모든 것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보아스, "하나님께 능력이 있음을, 모든 것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라는 왼팔의 기둥을 세운 것이다.
인간적인 오른팔과 왼팔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다는 의지로 성전앞에 오른편과 왼편의 기둥을 세웠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오른팔과 왼팔을 자랑하며, 그들이 우리를 살리고 세우는 줄 알고 지내오지는 않았는지?
아직도 우리의 오른팔과 왼팔을 의지한체 우리가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이루겠다고 하고 있지는 않는지?
솔로몬왕이 전무후문한 모든 부귀영화와 세상의 모든 지혜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믿고 의지했던 오른팔과 왼팔은 바로 하나님이었으며, 하나님의 대한 신앙으로 두 기둥을 세우고, 아침, 저녁으로 언제 어디서나 그를 세우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을 잊지않기위해 바로 그 놋 기둥을 세운 것이다.
주님!, 우리가 믿고 의지했던 오른팔과 왼팔 모두 내려놓게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세우시고 우리에게 능력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음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도 우리 마음에 오른편에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기둥과, 왼편에 하나님께 능력이 있다는 기둥을 세워 우리의 날마다의 고백이 되게하여주옵소서.
모든 능력과 힘의 원천이 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1년 11월 3일 목요일
솔로몬왕이 구한 것은 지혜가 아니라 듣는 마음이었다.
다윗의 아들이자 밧세바의 아들인 솔로몬와은 우리가 다 아는대로 당대에 아니 전무후무한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린 왕이었다. 분명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부어주셔서 그가 그 모든 것을 누린 것이다.
일천번제를 드린 솔로몬왕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주실까 물을때 우리는 지혜를 구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부귀영화를 구하지않고 백성을 잘 다스리기위한 지혜를 구한 착한 솔로몬왕에게 지혜는 물론 구하지않은 부귀영화를 주셨다고 우리는 배워왔다. 맞는 말씀이다.
그러나, 좀더 깊이 말씀을 이해해보면 솔로몬왕이 실제적으로 구한 것은 지혜가 아닌 "듣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개혁개정 성경에 열왕기상 3장9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이전 성경 개혁한글에는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헤로운 마음을 주사...."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지혜 자체를 구한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마음", "듣는 마음"을 달라고 구한 것이다.
지혜를 구하는 것과 지혜로운 마음 또는 듣는 마음을 구하는 것에 무엇이 다른가?
지혜를 구한다는 것은 그 받은 지혜로 일어난 일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 즉, 재판을 잘 하겠다는 것이지만,
듣는 마음이란 재판을 하기위한 수단보다는 판단과 재판을 하기 이전에 잘못을 정죄하고 징계하는데 촛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죄를 질 수 밖에 없었는지, 바로 살아야 하는 줄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쉽게 무너지고 잘못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는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유혹에 넘어갔는지, 각 사람의 사정을 이해하고 귀를 열어 듣고 각각의 형편을 잘 해아리겠다는 것이다.
자로 줄을 제고 저울로 무게를 재겠다는 지혜가 아닌 각 사람의 형편과 사정,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아 이해하려는 너그러운 마음, 곧 듣는 마음을 달라고 솔로몬왕은 구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며 자기 백성의 각 환경과 형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며,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려는 긍휼의 마음인 것이다.
솔로몬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달라고 구한 것이다.
그래서, 3장10절에 "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개혁 한글에는 ".....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가진 솔로몬의 요구에 흡족해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달라는 솔로몬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이 기쁘게 보신 것이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달라고 구한 솔로몬이 얼마나 이쁘고 자랑스러우셨으면 그가 구하지 않은 부귀영화까지 주셨겠는가?
신약에서도 예수님은 마태복음 6:33-34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이기에 구하지 않은 모든 것들로 더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혜를 구한다.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에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맞는지 맞지않는지 알기위해 지혜를 달라고 한다.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하면서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어떻게 실수하지 않고 결정을 잘해야할 지를 구하고 있다.
우리가 잘 하고자 하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지, 하나님의 마음을 달라고 구해야하지 않을까?
주님!, 오늘도 주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듣는 마음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동일한 마음을 가지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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