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5일 월요일

요10장14절 ...서로 잘 알고 지내나?, 양의 문 아니면 선한 목자?

요한복음 10장에는 목자이신 예수님과 양된 우리와의 관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2절에 양의 목자이신 예수님이 문지기가 문을 열면 그의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신다고 하신다. 그런데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7절에는 문지기는 커녕 생명도 없는 나무로 된 문, 양의 문이라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다시 이르시되..."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신다고 하면서,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고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를 위해 생명도 없는 양들의 몸에 부딛치고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지키고 버텨주는 문이라 말씀하신다"
양의 문이라는 말씀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하기때문에, 다시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말씀을 하셨을까?

양들이 울타리안에서 보호받고 생명을 보존받기위해서는 양의 문으로 들어와야 하기에 양의 문은 양들에게 생명의 문이요, 양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문이기에 양의 문이기를 자청하신 것이다.
9절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드러가면 구우너으 ㄹ받고..."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 들어가야지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양의 문인 예수님을 통해 들어온 자는 구원을 받는 것이다. 울타리에 들어온 양이 살아가는데, 생명을 이어가기 충분한 것인가? 양의 문안으로만 들어오면 다 끝인 것인가? 구원을 얻었다고 신앙이 자라가는가?

9월 하반절에 들어가면 구원을 받지만,"...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는다" 하셨다. 문 안으로 들어온 양들이 구원은 받았지만 매일 매일의 삶속에 꼴을 먹고 생명을 유지하며 살려면 다시 그 문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일을 매일 같이 반복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양의 문으로써의 예수님만을 믿고 바라봐서는 충분하지가 않는 것이다. 양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얻었으면, 이제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믿고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각각의 이름을 부르실때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라 나가야 푸른 초원의 꼴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매일의 삶 속에 꼴을 먹이시려 부르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10절에 생명을 얻데하되 풍성한 매일 매일의 삶을 얻게 하신다는 말씀인 것이다.

우리는 양의 문이신 예수님만을 믿고 있지는 않는지? 구원을 주신 예수님, 양의 문이신 예수님으로만...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써 구원받은 양들의 이름을 부르고 계시는데 언제까지 양의 문이신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있을 것인지?

혹시 우리가 예수님의 문으로 한번 들어와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예수님이 우리의 이름을 부르는 음성을 듣지 못하고 따라 나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꼴을 먹지 못해 굶어 죽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듣는가? 매일 매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지? 예수님이 각각의 이름을 부르실때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양의 문이셨던 예수님을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으로 바라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4절에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예수님을 알아야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에 대해서 잘 알고계셔서 나의 이름을 부르시며, 재훈아! 오늘도 푸른 초장으로 나가 꼴을 먹으러 가자 하시는데 혹 나는 예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그의 음성을 못 알아듣기에 따라나가질 못하는 것은 아닌지?
그 분의 음성을 듣을 수 있다는 것은 그 분을 잘 안다는 것이다. 나는 과연 예수님의 대해 잘 알고 지내는지?

예수님이 나를 알고 내가 예수님을 알고 지내는 삶을 예수님께서는 15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내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이 나를 알고 지내는 삶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그럼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어떻게 알고 지내셨는가?
우리도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알고 지내는 것처럼하면 예수님이 내 이름을 부르실때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라 갈 수 있지 않겠는가?

30절에 예수님은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알고 지내시는 관계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라고 설명하셨다.
그렇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가되어 서로가 서로를 자신을 알듯이 잘아는 것같이 내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예수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예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예수님의 음성이 어떠한지,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는지, 어느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실지를 아는 것이다.
예수님의 생각이 내 생각이되고, 예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되고, 예수님의 관심이 내관심이 될때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실때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 갈 수 있는 것이다. 왜냐면, 예수님의 음성을 알기에, 항상 듣는 예수님의 음성인지를 알기에 듣고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갈때 나의 삶이 풍성해 지는 것이다. 매일 매일 주님이 주시는 꼴을 먹을 수 있기에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또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가 됨을 38절에서는 ".... 아버지께서 내안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나가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안에, 하나님이 예수님안에 계신다는 것이다.
내가 예수님과 하나가된다는 것은 내가 예수님안에, 예수님이 내안에 계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성품과 하나가 되고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리할때 양의로써의 꼴을 먹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7절에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말이 너희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내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면, 내가 예수님안에 예수님이 내안에 계시면 예수님의 원하시는 바를 알게되고,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을 그리고 예수님의 뜻을, 방향을, 방법을, 때를 알기에, 예수님의 바라는 바대로 구하기때문에 무엇이든지 구한는대로 받게되며, 이뤄지는 것이다.

우리는 왜 예수님이 주시는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우리가 기도하는 기도의 제목들의 응답을 받지못하는가?

먼저 우리는 예수님과 잘 알고 지내는 관계가 되어야한다.
서로 잘 알고 지낸다는 것은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음성을 듣고 따라나가 꼴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예수님과 잘 알고 지낼 수 있는가? 예수님과 하나가되는 것이다.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가된 것 같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이 내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안에, 하나님이 예수님안에 거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안에 거하는 삶, 예수님과 하나가되는 삶, 예수님의 성품과 일치하는 삶을 살때 비로써 예수님을 잘 알고 지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바꿔야 한다, 우리의 성품을 바꿔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바꿔야한다,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한다, 우리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꿔야한다,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한다... 예수님의 것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주님! 예수님을 잘 알고 지낼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과 하나되고 하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이 내 이름을 부르실때 음성을 듣고 알아 오늘도, 내일도 매일의 삶속에서 주님을 따라 나가 꼴을 먹을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주님안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닮은 작은 예수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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