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장에는 날 때부터 맹인인 된 사람을 예수님께서 고치시는 내용이 나온다. 제자들은 그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이 누구의 죄때문에 그렇게 태어났는지 물을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는 뜩, 그 삶속에 주신 목적으로 주시고 이뤄가시기 위함이라 대답하신다.
태어날때부터 한번도 세상을 보지못한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삶의 목적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라 말씀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주신 목적을 나타내시고 이루시기 위해 어렵고, 힘들고, 혹 불행하기 까지한 환경과 과정을 지나가게하신다고 믿고 있는가? 왜 내 삶은 불행합니까? 누구때문에 내가 이렇게 삽니까? 왜 나는 이런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게 하시는 겁니까? 왜 나는 하는 일마다 일이 계획한대로 되질 않습니까? 왜 나는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까? 하고 묻는 우리의 질문에 예수님은 내 삶에 주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나타내시기 위해 또 이루시기 위함이라고 대답을 하시고 계신 것이다.
나의 이런 초라한 삶을 통해, 나의 이 불행한 삶을 통해, 나의 이 견디기 힘든 고통스런 이 삶을 통해 주님이 주님의 뜻을 이뤄가신다고요? 저의 이런 삶도 주님의 뜻에 사용된다고요? 이런 제 삶에도 주님의 목적을 심어주셨다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세상사람들은 멸시하고 왕따를 하며 무시하지만, 주님은 뜻을 두시고 주님의 목적을 제 삶을 통해 이뤄나가신다니 제가 그리 중요합니까?라고 감사를 해야하지 않는가?
예수님은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방법으로 그 소경을 고치신다.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시며 고치셨다.
그 더러운 방법으로 혐오감이 드는 방법으로 침과 진흙이 섞여 냄새나는 것으로 눈에 바르고 그대로 사람많은 길 거리로 실로암까지 가서 씻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7절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라고 쓰여 있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가서 씻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퇴! 하고 침을 뱉으실때, 왜 더럽게 예수님 이런 방법으로 하심니까? 라고, 그 더럽고 냄시나는 것을 눈에 붙이고 사람 많은 거리를 지나 실로암까지 가서 씻으라 하심니까?라고 반문하지 안았다. 많은 병자를 고치실때 말씀으로 네가 원하는 대로 될지어다, 네 믿음이 구원하였느니라하면서 낫게되는 방법을 나두시고 이런 이해 안가는 방법으로 고치셨을까?
그 맹인의 삶에 하나님의 뜻을 두시고 그 분의 목적을 이뤄가시는 그분을 믿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 분의 뜻과 목적을 그분의 방법대로 이뤄가시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내가 싫다고? 더럽다고? 창피하다고? 원치 않다고? 그 방법이 마음에 안든다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전적인 주님의 뜻과 방법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마음속에 역사가 있고 고침이 있고 나음이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는 너무좋은 것, 편안한 것에 습관되어있다. 힘들고, 어렵고, 피곤한 것을 원치않는다. 주님의 목적을 이뤄가시는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원하지 않을 때가 있고 불평할때가 있다. 주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은 그분의 그 뜻을 이뤄가시는 방법에도 순종한다는 것이다.
주님, 저의 초라한 삶에 주님의 깊은 뜻을 두시고 목적을주셔서 이뤄가시는 주님의 모든 방법을 저의 생각, 습과 GUSTO, PREFERENCIA 에 관계없이 창피하고, 더럽고, 힘들고, 어렵더라고 감사함으로 순종할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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